알제리 동부 천연가스전에서 나흘간 계속됐던 대규모 인질극이 현지시간 19일 알제리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나흘간 숨진 인질 45명을 포함해 최소 81명이 숨졌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인아메나스 현장에 몇 명의 인질이 있었는지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 최종 피해규모 집계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듯 하네요.

AP통신은 이번 사건이 2004년 러시아 베슬란 학교 인질극 사건 이후 최악의 인질극이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18일 작전으로 인아메나스 인질극 현장에서 구출된 이 중 한 명. 알제리방송 캡처 화면)



그런데 알제리 정부는 왜 이슬람 무장세력의 대규모 인질극을 강경진압했을까요. 

영국·일본 등 인질 당사국에게 알리지 않은 채 말이죠. 

해답 속에는 북아프리카의 역사적 맥락들이 깔려 있습니다. 


알제리의 핵심세력은 군부입니다. 

이들은 1990년대 이슬람 세력과의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사회치안을 확립했고, 여기에서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찾죠. 15만명이나 내전 중에 사망한 대혼란 이후 이슬람 테러공격에 맞서 ‘질서’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군부가 유일하다고 자부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격렬한 알제리내전 와중에 정부군도 반군도 손대지 않았던 알제리 경제의 중추인 에너지 시설을 알제리 남부의 사막을 떠돌던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번에 건드린 겁니다. 

군부는 이를 자신들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이번 사태를 받아들인 거구요.  ("아니 이것들이....") 

지역 전문가인 존 마크스 역외정보컨설턴시 대표는 “알제리가 인질 당사국들에 작전을 사전 통보했다면 그게 의외였을 것”이라고 BBC에 19일 말했네요. 


인질이 수십명 단위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홀로 해결에 나선 알제리의 모습도 예상 밖이었죠.

이처럼 남다른 주권의식은 알제리의 과거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알제리는 1830년 프랑스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된 뒤 1954년 반불 무력항쟁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우아하게 자유평등박애정신같은 훌륭한 문화, 정치상품으로 알려진 프랑스지만 당시만 해도 18~19세기에 확보한 식민지들을 잃을까봐 인도차이나와 마그레브에서 전전긍긍하던 제국이었죠. 

 그 독한 면모를 숨김없이 보였던 게 바로 알제리 독립전쟁이었습니다. 


1962년 종전 때까지 최대 150만명이 숨졌거든요. 


이렇게 피흘려 얻은 독립인데, 

알제리의 정서상 외국군이 자국 영토내에 진입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프랑스가 말리의 이슬람세력을 공습할 때 전투기에 영공을 열어주었지만, 땅에 외국군이 들어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거죠. 

게다가 알제리 민중 사이에서는 알제리의 엘리트계층과 군부가 자국의 석유·가스를 놓고 외국 정부와 짝짜꿍이라는 의혹이 만연하다네요.

외국군과 협조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알제리 정부는 지지기반이 취약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는 겁니다. 북아프리카연구소의 로버트 파크스는 “(당국은) 자신들이 국제사회에 매인 꼭두각시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자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고 지적합니다. 



                  (이슬람 무장세력에 위협당한 인아메나스 노동자들이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모습. 엔나하르TV 캡처/AFP)


물론 이런 것들을 다 감안하더라도 알제리 및 외국인 인질이 23명이나 숨진 ‘작전’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알제리 군대가 아무리 대테러작전으로 잔뼈가 굵고 미국도 북아프리카 알카에다 진압에 정보를 빌려야 하는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납치범들이 인질들을 차량에 태워 이동하려고 하자 알제리군이 차량을 공습했다네요. 

현지 지리에 밝은 무장세력이 외국인 인질들을 사하라 사막으로 옮길 경우 사태가 장기화되고 무장단체가 몸값 또는 죄수교환을 요구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서방의 구출작전은 ‘인질 중심’인 반면 알제리의 경우 ‘테러 진압’이 앞선 것인데요. 

이슬람 세력을 가차없이 진압해온 알제리는 대테러작전에서 불타협, 불관용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국제사회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은 거죠. 



일단 국제사회에서는 알제리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한 듯 합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알제리 정부을 앞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네요. 

프랑스도 자국 인질이 숨졌지만 일단 덮었습니다. 

말리로 프랑스 전투기들이 오가려면 알제리의 영공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그만큼 향후 북아프리카 테러와의 전쟁에서 알제리의 자원이 유용한 건데요. 

알제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 무장단체들을 추적해온데다, 현재 북아프리카에 활동영역을 구축한 알카에다마그레브(AQIM)의 발생지입니다. 

하지만 알제리가 과연 서방과 얼마나 협조할지는 의문이죠. 

1990년대 알제리가 이슬람 테러단체를 잡느라 뼈빠지게 고생하고 있을 때 외국 어느 나라도 알제리를 지원하지 않았거든요. 

현재 알제리의 대테러 작전은 알제리 국경 내에 그칩니다. 과연 미국이 알제리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지금으로선 알제리는 우리집, 그러니까 자국 내 무장세력 소탕 정도만 관심이 있어 보이거든요.  


한편, 



                                    (이번 알제리 대규모 납치극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복면여단'의 지도자 모크타르 벨모크타르)



무장단체간 내분이 이번 알제리 납치사태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19일자 옵서버는 알카에다마그레브 총책임자로 선임되지 못한 모크타르 벨모크타르가 지난해 ‘복면여단’을 만들고 자신의 저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력과 자금, 명성을 놓고 경쟁하는 무장단체들은 2001년 알카에다의 9.11테러처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큰 건’을 노리기 때문인데요.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바 빈 라덴도 ‘부잣집 도련님 우쭈쭈쭈....' 대우를 받다가 1998년 케냐 주재 미 대사관 폭탄테러를 자행하고서야 이슬람 단체들의 인정을 받았다고 하죠.  


어찌됐든 서방이 손을 댈 때마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어찌 갈수록 꼬여갑니다. 

리비아 내전에 개입해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을 도왔는데

이제는 그 때 지원했던 그 무기가 말리 북부로 흘러들어 말리 내전이 발발했고,

말리 내전의 불똥이 튀어서 이제는 알제리의 에너지 시설이 공격을 받네요. 


더 깊이 들어가자면 아프리카를 자국 이익의 뒷마당으로 여겼던 프랑스의 '프랑사프리크',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아프리카의 내정에 간섭했던 오만한 역사를 짚어봐야겠지만

일단 오늘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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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