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2017년까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지난 23일 밝혔습니다. 

 물론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라는 단서가 달려있죠. 그 전에 유럽연합에 ‘양도’했던 사법 및 조세 ‘주권’을 되찾아오는 내용으로 회원국 지위 재협상도 할 계획인데요. 

 캐머런 총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내내 영국은 ‘감놔라 배놔라’ 훈수를 둬서 불같은 성격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에게 “닥쳐!”라는 얘기까지 들은 적이 있죠. 유럽연합이 토빈세를 신설해 유럽재정위기를 함께 극복해보자며 공생의 방안을 제안했을 때에 캐머런은 “절대 못한다”면서 버티기도 했구요. 

 유럽연합이라는 전체 드라마로 봤을 때 약간 ‘밉상 캐릭터’랄까요. 








 그런데 이 ‘밉상 캐릭터’가 역사가 깊습니다. 

 영국은 ‘유럽 회의론’의 심장부와도 같거든요. 

 (이하 영국 일간 가디언에 지난해 1월 26일 실린 기사 ‘Britain, proud home of Euro-scepticism’ 내용을 발췌, 재구성. 제가 공부하면서 정리해봐요...)




 영국은 유럽연합의 첫 탄생 때부터 회의적이었습니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았죠. 

 1957년 로마에서 유럽연합의 첫 발을 내딛는 협약 체결식 당시 영국은 장관급도 아니고 무역담당 국장급을 보냈거든요. 참여할 생각은 없으니 참관이나 하자는 거였죠.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유럽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전략적 실수를 깨달은 당시 총리 해럴드 맥밀란은 1961년 부랴부랴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프랑스의 샤를 드 골 대통령은 영국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를 즉각 수용하지 않았죠. ‘트로이의 목마’같은 존재로 봤다네요. (놀라운 혜안이다...)


 영국은 우여곡절 끝에 1973년에야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를 얻습니다. 

 영국 정계 내에서 유럽 회의론이 그나마 잦아든 것은 2차대전의 기억이 아스라히 사라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였습니다. 

 노동당은 ‘철의 여인’으로 불린 보수성향 마거릿 대처 총리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민주의 성격의 유럽연합을 포용하려고 했죠. 

 하지만 보수당은 여전히 유럽연합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채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대처 총리는 심지어 1986년 유럽의 ‘단일유럽화’ 방안의 연방주의에 “속았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보수성향이 강한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2010년 11월 25일자. "영국을 유럽에서 구하자")



 이같은 유럽 회의론은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유독 영국에서만 독특하다 싶을 정도로 강합니다.

 유럽 내에서도 영국은 유럽이지만 유럽이 아니다, “해협에 낀 안개, 고립된 대륙”이라는 얘기도 있죠.  

 가디언은 기사에서 그 네 가지 원인을 꼽습니다. 


 -고립의 역사 

 -지리적 위치 

 -사법체계와 지적 전통

 -종교


 영국은 8500년전 해수면 상승으로 북해 섬나라가 됐다가 다시 해협터널로 프랑스와 연결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고립의 역사를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어는 독일어도 라틴어도 아닌 독특한 언어로 발전했습니다. (어휘를 보면 독어도 라틴어도 프랑스어도 짬뽕으로 섞여있습니다.)

 실용적인 영미법은 로마법과 체계가 다릅니다. 

 헨리 8세가 만든 성공회는 카톨릭도 개신교도 아니죠. 


 전쟁에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가운데 피점령의 경험이 없는 나라는 영국과 스웨덴 2개국이 유일합니다. 

 경제, 학문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다소 뒤쳐졌다고 하더라도 영국에서 정치적 자유만큼은 번영했죠.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의 해양 탐사와 무자비한 해적들에서는 이 ‘특별한 섬’에 대한 감각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선사시대부터 해양무역을 해온 영국은 해군력과 산업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제국으로 떠오르죠.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였잖아요. 


 1945년 전후 경제력이 예전만 못하게 됐을 때에도 영국은 여전히 자신을 미국, 소련과 맞먹는 세계 3대 영향력 국가로 여깁니다.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가 있었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과거 영국 식민지인 ‘커먼웰스’가 있지 않겠습니까. 

 "유럽 따위가 뭐 필요하다고?" 이런 식이었죠. 같이 어울리기엔, 너무 잘났달까....





 

  그래서 전후 대륙 유럽이 카톨릭과 사회연대, 그리고 통제되고 보호되는 시장 등을 비롯한 사민주의로 기울 때 영국의 대처는 미국의 레이건과 함께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 그러니까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통한 번영을 꾀합니다. 

 물론 영국은 ‘제3의 길을 표방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집권기에 친유럽 노선으로 많이 달라집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회의론적인 노선을 아예 바꿀 수준은 못됐죠. 


 특히나 캐머런 총리가 속한 보수당에서 그같은 역사는 이어져옵니다. 

 대처가 1988년 물러났지만 보수당 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계속됐습니다. 

 그를 이어 총리가 된 보수당의 존 메이저는 유럽 단일통화 프로그램, 그러니까, 유로화를 도입하려는 방안을 추진하지만 중단되죠. 

   유로화는 어째저째 도입을 막았지만, 관료주의적인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가 점점 더 거만해진다고 영국인들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어찌 감히 대륙 유럽의 관료들이 영국 법과, 영국의 군사력, 영국의 수산업과 농업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나, 불만이 점점 쌓여갑니다. 


  그런데 유럽연합 회원국 지도부는 유럽연합을 경제공동체를 넘어서 정치통합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미국이나 중국과 대응할 수준으로 키워낼 계획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보수당 지도부는 ‘넓되 느슨한’, 그러니까 과거 소비에트연방 수준의 공동체를 생각했던 터라 "엉, 이건 좀 아니잖나" 계속 후회하게 됩니다. 대처의 “속았다!”의 메아리가 수십년 째 보수당 안을 메아리쳤던 거죠. 

 보수당은 독립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터라, 테크토크라트적이고도 엘리트적인 유럽연합 엘리트들과는 취향이 맞질 않았네요.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유럽의 두통거리가 돼온 유로존 재정위기는 영국의 보수당이 보기에는 유럽의 오만한 테크노크라트들의 실패인 겁니다. 유로존 위기의 타개를 위해 이런저런 규제를 요구받고 더 많이 공여하고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현 유럽연합 지도부, 그리고 관련 정책은 영국의 보수당이 보기에는 ‘떡잎부터 알아봤어야 했던’ 문제들인 거죠. 


 이상 영국이 유럽연합과 헤어지려는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맥락을 짚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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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