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강렬한 경험, 자신이 몸바쳐서 헌신했던 어떤 경험은 종종 한 사람의 평생을 지배합니다. 
훗날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되더라도 그 때의 경험은 결코 잊혀지지 않죠. 

강상중, 현무암이 지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이목 옮김, 책과함께)는 일본 우익의 거목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일본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유했던 하나의 경험을 추적한 책입니다. 


바로 '만주국'이죠. 



우리에게 다소 추상적으로 기억되는 '만주국'은 1932년 3월 건국돼 2차세계대전 종전시점인 1945년 8월까지 15년간 단명했던 제국입니다. 


보통은 '일본이 중국 북부에서 군사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끌어들여 세운 괴

뢰국가'로들 많이 알고 있지요. 


지은이들은 '계획국가' 만주국은 오래 가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잉태됐던 '계획경제'와 '통제정치'의 흔적들이

전후 두 인물의 부상에 따라 일본과 한국의 전후정치와 경제를 형성했다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만주 인맥'을 통해 전후 한국과 일본의 외교정상화와 일본의 경제지원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하지요. 



기시 노부스케는 '쇼와의 요괴'로 불렸던 권세가이자 A급 전범입니다. 1936년 만주국에 부임한 이후 총무청 차장으로 "일본의 꿈과 야망의 실험장"인 만주국의 경제개발을 이끌었습니다. 


북으로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위협과 중국 세력을 견제하면서 만주국에 통제경제정책에 바탕한 국가를 세우려던 그는 국가자본주의를 추진합니다. 

 그는 "특수회사 또는 준특수회사의 형태를 취했던 국가권력의 강력한 통제 하에서 국방적 중요산업 또는 공공 및 공익적 중요산업을 육성하고 생산력 확충을 통해서 일만 경제블록을 형성하는"(p.170) 전략을 세우죠. 여기서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이 나옵니다. 그의 정치철학은 "관제장치를 통한 강력한 정치력의 결집과 그것을 위한 '지도 원리'의 도입"이었습니다. 농업 중심인 만주경제를 중화학 공업경제와 군수산업 중심으로 급격하게 바꾸는 데 필요했던 거죠. 하지만 1945년 일제 패망과 동시에 만주국은 사라지고 그는 전범의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 새로운 국가는 새로운 경제, 새로운 기회를 낳았습니다. 계급의 사다리가 이미 정해진 조선반도의 청년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만주국으로 많이 떠났죠. 그 중 한 명이 교사로 일하던 청년 박정희입니다. 오카모토 미노루 관동군 중위였던 그는 만주국에서 계급상승의 사다리에 발을 올렸지만 원폭투하 이후 일본의 갑작스런 패망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패잔병으로 귀향한 그는 1948년 '여순사건'으로 빨갱이 혐의를 받고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은 전후 각각 일본과 한국의 정계를 장악할 수 있던 걸까요. 


저자들은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꼽습니다. "미소 대립이라는 거대한 파워시프트는 '제국의 귀태'들이 새로운 승리자(미국) 아래에서 소생할 무대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도왔던 것은 '만주국' 인맥이었습니다. A급 전범 기시의 석방탄원을 넣은 시나 에쓰사부로, 박정희를 구명한 백선엽과 정일권 모두 만주국 사람들이었지요. 기시와 박은 모두 반미성향을 깊이 숨긴 채 냉전의 조류에서 새로운 보트 위에 오릅니다. 게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박정희는 다시 군에서 주요보직을 맡을 기회를 얻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961년 11월 11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입니다. 쿠데타를 이끌었던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일본 정계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방문한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는 이같이 


발언했다고 전해집니다. 



"경험도 없는 우리한테는 그저 맨주먹으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욕만 왕성합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그런 박정희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회고록에 남기고 있습니다. 




전후 한일 외교정상화, 그리고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등 한일 관계의 고비마다 기시를 위시한 만주인맥은 작동합


니다. 대규모 산업지원과 그에 따른 부패의 고리도 얽혀들어가지요. 저자들은 "막후의 채널을 포함해서 리베이트


나 커미션같은 부패와 유착의 인맥도 그물처럼 펼쳐져 있었다"면서 "해협을 뛰어넘은 이권의 고리가 만주인맥을 


통해 성립돼있었던 것인데, 그 중심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였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한국의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자주국방을 지향한 중화학공업화, 그리고 "막강한 군을 배경으로 하는 박


정희의 강력한 리더십, 소수의 경제 테크노크라트에 의한 의사결정과 자원배분에 관한 권한의 독점, 수출시장 확


보와 기술력 및 외자도입을 목적으로 하는 대외관계 구축" 을 비롯한 경제전략을 비롯해서 "만주국협화회를 방불


케하는 국민동원을 위한 새마을운동 등 여러 우사한 형태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연구를 인용합니다. 




책에 나온 자세한 내용들을 보다가 깜짝 놀랐네요. 


어릴 적 트럼펫 소리가 나오면 멈춰서고 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만주국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다 지나간 얘기 같죠. 박정희가 총탄에 사망한 뒤 1987년 기시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니까요.  


그런데 역사는 돌고 도는 걸까요. 


지난 4일 첫 공식행보를 시작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특사단을 


맞아 친서를 전달받았는데, 바로 그 일본 총리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네요. 


 


죽기 전까지 일본의 치욕스런 패전과 미국에 의한 점령의 역사를 끝내려던 기시 전 총리의 정신은 아베 총리에게


로 계승돼 현재 일본의 내각은 온통 극우파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새 내각은?


질곡의 현대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