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여론조사 1위 정당인 민주당 당수 베르사니.              사진:AP)




 이탈리아 총선이 현지시간 24~25일 양일간 실시됩니다. 결과에 따라서 이탈리아의 향후 경제노선이 갈리기 때문에 시장에서 주목하고 있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3위 경제대국이자 국내총생산(GDP) 127%라는 엄청난 국가부채를 짊어진 이탈리아가 긴축노선을 유지할지, 아니면 반기를 들지 여부가 결정납니다. 유로존의 대마 이탈리아가 휘청일 경우에 유로존도 적잖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탈리아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낮아짐 → 이탈리아 국채이자, 구제금융 마지노선인 7% 상회 → 이자부담 못견딘 이탈리아 구제금융 신청 → 유로존 구제금융기구 자금 부족 → 유로화 가치에 악영향 → 다른 유로존 국가로 위기 전이 → 유로존 경제전망 암울 ... 이런 식으로 굴러가게 됩니다. 물론 총선 결과가 즉각 이런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아요.)


 유력한 시나리오는 ‘가던대로 고’입니다. 여론조사 전국 1위인 중도좌파 민주당이 선거법에 따라 전체 하원의석의 55%를 자동 확보하고, 중도연합과 연정을 꾸려 긴축재정을 유지하는 거죠. 2011년 말부터 이탈리아 총리를 맡아온 마리오 몬티가 새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아서 구조조정 및 개혁정책을 마무리짓게 됩니다. 


 

                                    (그 숱한 스캔들과 재판에도 살아남은 나의 눈을 바라봐...!            사진출처: 가디언)



 막판에 무섭게 떠오른 시나리오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재등장하는 겁니다. (이번에 정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분의 사진을 태워 물에 섞어 마시면 영생한다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그가 이끄는 우파 자유국민당은 재산세 환급과 탈세자 사면 같은 포퓰리즘공약을 내걸고 지난 8일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1위 민주당을 최고 2.5%포인트차로 바짝 추격중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1994년 이래 총리를 3번이나 지내면서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그는 2011년 재정위기 심화에 붕가붕가 파티, 미성년자 성매매 등의 추문으로 총리직에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했죠. 그런데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재벌인 그는 지난 두달간 줄기차게 방송에 출연하면서 정치부활을 꾀해온 겁니다. 



 이탈리아의 현재 정치경제적 문제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CNN기사 참조)


 1950~60년대 이탈리아는 일본과 한국에 맞먹는 경제성장을 구가했지만, 1960년대말부터 70년대 초에는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사태에 휘말립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에 노동자 복지를 확대하면서 사회적 안정을 꾀합니다. 조기퇴직자가 연금을 수령할 수 있었고, 의료복지도 대폭 늘어나지요. 이탈리아는 1975~95년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10%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누적됩니다. 현재 재정적자는 GDP대비 120%가 넘죠. 


 이런 게 바로 ‘퍼주기 복지’겠죠. 제대로 된 경제정책 없이 분배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경제체질을 약화시켜서 국민 모두에게 부담을 안기기 때문입니다. 1999년 유로화 가입 전에 이탈리아는 자국화폐 리라의 환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사실 이같은 방식은 이탈리아의 경직된 노동정책과 과도한 기업세와 각종 규제 등의 구조적 문제를 고치지 않은 것이라 ‘눈속임’에 불과했습니다. 이탈리아의 2001~10년 경제성장은 세계 180위로 에티오피아와 비슷합니다. 

 산업이 활력을 잃고 기존의 노조 중심의 노동정책으로 고용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3명 중 1명이 실업자이죠.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실업 청년들.                  사진: presstv.ir ) 



 이렇게 정치가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유능한 정당에게 국정운영의 권한을 맡기는 게 유권자들의 책임일 겁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 점에 있어서 좀 독특했습니다. 일 못하는 베를루스코니에게 '최장수 총리'의 영예를 안긴 거죠. 


 이탈리아에서 32년 거주한 작가 팀 파크스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탈리아의 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며 그가 이탈리아의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닐까, 지적합니다. “산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이다. 산이 움직인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언론을 장악한 언론재벌 베를루스코니는 그같은 환상을 주조하고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에, 정치적 무능과 추문에도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단 얘깁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정치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리 정밀하지 않습니다.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친척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뇌물을 받거나 공적자금을 사적인 용도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도 사퇴하거나, 사퇴할 생각도 하지 않고 도덕주의자들을 비난하며 직위를 유지한다.” (응? 이건 최근 한국에서도 종종 보는 얘기군요.)

 “남부로 갈수록 탈세가 만연해 나폴리에서는 치과의사가 경찰보다 더 낮은 수준의 소득을 신고한다.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꿔오거나 세율을 올려 메워야 한다.” “AC밀란의 구단주 베를루스코니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마리오 발로텔리를 영입했고, 그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또다른 변수는 풀뿌리 정당인 '오성운동'을 이끌고 있는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인 베페 그리요(사진)의 부상입니다.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그는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 실시와 긴축정책 중단, 의원급여 삭감 등을 내걸고 있습니다. 정책은 그리 참신하거나 현실성있진 않네요. 하지만 그는 기존 정치권에 크게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20%선의 지지율을 얻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죠. 그의 지지층의 심경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을 듯합니다. 

 "유럽연합도 싫다. 기성 정치권도 싫다. 도대체 당신네들이 만든 이 개똥같은 현실이 뭐란 말인가? 나는 차라리 정치신인에게 표를 주겠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지지율 3위 주자로 떠오른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도 볼 수 있겠죠. 그녀 역시 유럽연합에 반대하고 기존 정치권을 비판하면서 인기를 얻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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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