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아먹는 거인과 이에 맞서는 인류를 그린 <진격의 거인>이 인기다. 일본 만화가 이시야마 하지메가 그린 판타지물로 올해 4월 기준 단행본 발행이 총 1200만권을 돌파했다고 한다. 대중문화 코드로도 주목받으면서 ‘진격의 준하’나 ‘진상의 거인’ 같은 패러디도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대히트는 만화가 품은 중첩적인 은유의 구조가 일본과 한국 대중의 마음속 ‘무엇’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MBC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



식인 거인의 모티브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대표적인 ‘세대 갈등’ 이야기에서 나온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사투르누스)가 자식들에게 살해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아이들을 잡아먹었던 것이다. 이에 관한 가장 강렬한 작품은 프란체스코 고야가 그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이다. 암흑 속에 눈 흰자위를 희번덕이는 그는 아들의 머리와 오른팔에 이어 왼팔을 뜯어먹을 참이다. 만화에서 거인의 식인 장면은 이 그림과 꽤나 닮아 있다. 



가진 것은 오로지 식욕뿐인 거인들이 인간을 삼키는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사실상 강요하며 청춘을 삼키는 이익지상주의 사회와도 다르지 않다. 고야의 그림 역시 19세기 초반 식민지 전쟁터로 청년들을 내몬 스페인 제국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진격의 거인>은 ‘계급 갈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거인을 막을 3중의 성벽에서 가장 안전한 중앙에는 귀족계급이, 가장 바깥쪽에는 하층계급이 산다. 예고 없이 삶을 짓밟는 ‘거인’으로 상징되는 위기에 가장 취약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이다. 하지만 거인의 ‘저녁밥’이 될 가능성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1997년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빈곤층이 무너졌지만 지금은 중산층도 붕괴 중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휩쓸려간 것은 어촌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일본 대부분 지역이 원전사고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고 있다. 


진격의 거인



거대한 위험이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공상과학물에서 한때 괴물은 거대한 문어나 벌레처럼 우리와는 다른 생물종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다. 소통도, 공감도 불가능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좀비라면 삽자루라도 들어서 저항하겠지만 거인의 키는 수십m나 된다. 현대인이 위기사회에서 느끼는 무기력감이 그만큼 깊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에서 이 같은 ‘거인’들을, 우리는 매일같이 만나면서 산다. 그 거인들은 하청업체를 착취하는 대기업일 수도, 지위를 남용해 제 금고를 채우는 권력자의 모습일 수도, 무고한 사람을 청부살해하고도 교도소 대신 병원에서 안락하게 지내는 부잣집 마나님일 수도 있다. 만화 속 젊은이들은 거인들에 용감하게 맞선다. 대리만족에만 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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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