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세력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가장 비용이 싼 방법은 무엇일까요. ‘딱지를 붙이는 겁니다. 한국으로 치면 종북주의자라는 냉전 풍의 딱지가 수 십년간 유효했습니다.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딱지를 붙여 소통의 수고로움과 타협의 번거로움을 피하는 거죠. 물론, 장기적으로 이는 사회에게 월말 카드값같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듭니다.

 

한국과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터키가 현재 이 월말 카드값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현지시간 지난달 30일부터 사흘째 경제수도 이스탄불의 게지공원의 개발반대로 촉발된 시위가 전국 60여개 도시에서 벌어지면서 2일까지 939명이 체포돼고 1000명 이상이 부상당했습니다. 엠네스티는 사망자도 2명 있다고 밝혔지만 아직 확인은 안됐죠. 터키에서 지난 수 년간 이 정도의 대규모 시위는 유례가 없습니다




 

게지공원은 이스탄불 도심에 있는 '탁심'(Taksim)광장과 닿아 있는 녹지로, 이 공원을 없애고 대형 쇼핑몰을 건설하는 개발계획이 추진됐죠. 지난 20년간 녹지를 쓸어버리는 급격한 도시화에서 이스탄불의 작은 허파같은 곳곳인 이곳의 개발에 반대하는 이들은 묘목을 심으며 평화시위를 벌여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30일 터키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마구잡이로 쏘며 강경진압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왜 분노했을까요. 사태의 핵심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개발주체가 정부도 아닌 사업에 왜 경찰이 개입했나.

   2. 왜 민주국가 터키는 왜 평화시위를 강경진압했나.



탁심 광장에 위치한 높이 11미터의 동상. 터키 현대화의 아버지 케말 아타투르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탁심 광장에서 닷새째 계속된 시위는 아타투르크가 제시한 '세속적 이슬람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터키 유권자들의 요구로도 볼 수 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터키는 1980년대 경제자유화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누렸습니다.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등 수니파 이슬람국가들이 민주화 이후 경제 성장모델로 터키식 개발모델을 꼽을 정도이죠. 하지만 급속한 성장은 정경유착과 부패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고전 중의 고전은 막대한 예산과 ()자금이 오가는 부동산 부문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터키의 선거 등 정치부문의 투명성은 높아졌지만, 건설부문을 둘러싼 횡령과 부패는 증가했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4월에는 공공주택사업을 담당하는 관료 2명이 뇌물수수 및 횡령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죠. 개발만 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부패관료들은 개발사업 허가를 남발했습니다. 터키 일간 후리예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스탄불 내에서 남발된 쇼핑몰 건설인허가 때문에 벌써 11곳이 한국의 가든파이브마냥 유령쇼핑몰이 됐습니다. 그런데 터키 당국은 개발난 속 오아시스같은 공공의 자산인 공원을 밀어 사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질 쇼핑몰을 짓겠다는 거죠. 근거가 빈약한 개발인 겁니다. 

집권 정의개발당(AKP)토건동맹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의 사위도 건설업자이고, 적잖은 당 관계자들이 부동산 등으로 이익을 얻었다는 거죠. (이 강력한 데자뷰....)

집권 세력이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시민 공공의 이익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게 현재 터키의 시위로 나타난 겁니다. 


 

평화시위 강경진압은 예상 가능했습니다. 터키의 민주주의의 후퇴 징후가 최근 수년 사이에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2003년 이래 10년째 장기집권 중인 에르도안 개발정의당 정부는 독재성향으로 기운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2007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후에 이같은 경향이 강해졌죠.



눈과 코와 목구멍이 매워지는 사진. 터키 경찰의 이번 시위 강경 진압은 국제적인 비난을 샀고, 온건 성향의 압둘라 귤 대통령이 이스탄불 시위진압 경찰에 철수를 명령했다.



1923년 터키를 건국한 케말 아타튀르크는 의회민주주의와 이슬람, 세속적인 시장정책 사이에 균형잡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도입했는데, 이슬람 정당인 개발정의당은 이 균형을 사실상 깼습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유럽연합(EU) 가입에 한 발짝 다가가는 성과 등에서 자신감을 얻으면서죠. 터키 정부는 최근 밤 10시 이후 주류판매 금지같은 이슬람 성향 정책을 도입해왔습니다. 반발은 적잖았지만 에르도안 총리는 오로지 불도저의 한 길을 걸어오면서 사회 분열을 '선도'한다는 비난도 들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간데없이 총리가 신호하면 검찰은 정부비판적 인사들을 무리하게 기소한다는 비판도 있죠. 20113월에는 9명의 언론인과 작가들이 집권 정당에 대한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체포돼 이중 7명이 수감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소된 이들이 수백명이라죠.

우리식으로 치면 종북집단비슷한 용례가 터키에서는 에르제네콘입니다. 집권 개발정의당을 뒤엎으려는 쿠데타 음모를 뜻하는데요. 2007년부터 2011년 사이에만 400명 이상이 이 에르제네콘의 일원이라는 혐의를 받고 체포됐습니다.


터키 야권이 그를 '포스트모던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일면 수긍이 가는 일이겠죠. 이같은 에르도안의 방식에 반발한 터키인들의 목소리는 이번 시위를 통해 폭발적으로 표출된 겁니다. 굳이 과거 한국의 사례에 빗대자면 광우병 우려가 있대서 우리가 싫다는 미국소를 왜 정부 멋대로 수입하려 드느냐며 광장으로 뛰쳐나왔던 2008년 상황과도 비슷하게 보이죠.


하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처럼, 에르도안도 대화할 뜻은 없어보입니다. “쇼핑몰 건설을 강행하겠다1일 밝혔네요. 이번 시위를 "비민주적"이고 "불법"이라고도 규정했습니다.  

의회 다수당이니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화와 소통이 실종될 경우 당장 집권정당의 몸은 편하겠지만’, 한 국가의 정치는 나중에 밀린 카드값같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겁니다

소통과 설득으로 해결할 도시 개발문제에 최루탄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제 때 해결했어야 할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만들지 않고 관리하지 않아서 빚어지는 문제 아니겠어요. 


이번 시위대 중 일부는 에르도안에 사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터키 공화국 정신의 토대를 놓은 아타튀르크의 초상화도 등장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네요. 

시위가 잦아든다고 하더라도 성공한 '이슬람 민주국가'로서 터키의 이미지가 상당히 구겨지는 것은 불가피해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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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