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환수 작업이 본격화됐습니다. 

그의 두 아들의 이름도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오르내리죠. 

국제사회에서 그간 벌어진 독재자의 재산환수 노력을 기존의 보도들을 토대로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독재정권이 무너질 때에는 예외없이 독재치하에서 빼돌린 재산이 화두가 됩니다. 가장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1년 아랍 민주화 혁명을 계기로 도미노처럼 무너진 중동의 독재자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독재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대부분 국민경제에 원래 돌아갔어야 할 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기업의 이권에 개입하거나 사업비용을 부풀리거나 황금알낳는 기업을 보유하는 방식 등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해 해외로 빼돌리죠.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드러난 독재자들 역시 그랬습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총 805000만달러, 9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스위스와 프랑스 등지에 보유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30년 장기집권 끝에 물러난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빼돌린 재산은 700억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피 중 피살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몰래 숨긴 재산이 2000억달러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독재자들이 빼돌린 재산은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독재자들이 해외로 빼돌리는 돈이 연간 400억달러이고, 은닉 재산은 14000억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도 포함돼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독재자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최근의 중동사례의 경우에는 국제사회의 협조 하에 착착 진행됐습니다. 혁명 이후 이들 국가를 다시 민주주의로 복원하고 재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독재자들의 숨겨진 '돈주머니'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 서방국가들 입장에서는 숨은 재산찾기에 적극 협력해야할 필요가 있었죠. 무바라크의 재산의 경우에는 영국 수사당국이 재산추적을 벌였고 스위스 정부는 무바라크 일가의 자산을 동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돈세탁이나 외국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합법성을 얻은 경우도 있어서 추적이 쉽지 않다고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독재자들의 은닉계좌 얘기가 나오면 스위스가 빠지지 않습니다. 

 중립국인 스위스 은행들은 오랫동안 누가 어떤 돈을 맡겨도 출처를 묻지 않는 사업관행을 유지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도 옛 얘깁니다. 유엔은 2007년에 개도국의 부패한 지도자나 관리들이 빼돌린 국가자산을 환수하도록 돕는 계획을 만들었는데, 이에 따라 스위스는 2011년 독재자 재산환수법을 마련해 발효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중동 독재자들의 숨겨진 재산도 꽤 빨리 계좌동결 조치 등이 취해졌죠. 



스위스를 사랑한 독재자들



 이렇게 환수한 돈은 독재 치하의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필리핀은 지난 3월 독재시절 자행된 고문과 구금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전 독재자의 계좌에서 몰수된 비자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1972년 계엄령으로 필리핀 정권을 장악한 페르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혁명을 계기로 하야했는데, 그의 집권기에 불법 감금 및 고문을 당한 피해자는 시민운동가와 기자 등을 비롯해 9500명이 넘습니다. 필리핀은 그가 하야한지 26년 만인 올해 3, 마르코스의 스위스 계좌에서 몰수한 비자금 2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2180억원을 이들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같은 법안에 최종적으로 서명한 아키노 대통령은 마르코스 정권기에 암살당한 활동가의 아들이자 1986년 당시 민중시위를 주도한 고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아들이죠. 

 

 필리핀이 26년에 걸쳐 환수한 마르코스의 재산규모는 10억달러입니다. 그가 집권기에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00억달러의 10% 수준에 그치죠. 마르코스는 집권 전부터 스위스 등지에 이름 뿐인 재단을 만들어 해외로 재산을 은닉했는데상당부분을 환수하지 못한 겁니다.



여보, 우리 가문 곧 다시 일어날 거에요.



 그런데 필리핀은 이 빼돌린 재산찾기 작업을 최근에 중단했습니다. 

 지난 1월 발표였는데, 재정긴축 하에서는 부정축재 재산을 찾는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워라고 필리핀 정부는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 언론들의 해석은 다릅니다. 마르코스 일가가 정치가문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기 시작하면서 정부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고 있죠. 지난달 실시된 필리핀 선거에서 전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으로 사치벽으로 악명을 떨쳤던 이멜다는 하원에 당선됐고, 아들 마르코스 2세는 상원 배지를 달았습니다. 딸 이미는 주지사로 선출됐구요. 3년 뒤인 2016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2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동과 필리핀의 사례를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독재자의 숨겨진 돈을 찾는 데 적극적이냐 아니냐는 여론과 정치구도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중동의 경우 독재자가 축출될 정도로 강력한 민중혁명이 있었고, 또 사회 재건의 필요성에 개입 당사자인 서방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환수작업이 여러 암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중입니다. 반면 필리핀의 경우에는 마르코스 가문이 부활할 수 있을 정도로 기득권층 세력의 은밀한 지지가 유지돼왔습니다. 아키노의 개혁정책이 못마땅한 보수세력들이 마르코스 가문을 지원하는 거죠


 젊은 세대가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필리핀 유권자의 3분의 2는 마르코스 독재 이후 태어난 이들입니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죠. 이에 필리핀 정부는 현대사 교육을 강화해 마르코스의 독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세대가 지나온 현대사를 통해 한 사회가 겪은 비극과 실책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하자는 게 바로 역사교육이 필요한 이유니까요.

 

 기득권세력과 정치권의 의지부족으로 재산환수를 거의 당하지 않은 또다른 사례는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수하르토는 1999년 하야하기 전까지 32년동안 인도네시아를 통치했습니다. 그의 일가친척은 천연자원 풍부한 인도네시아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대부분 장악하고 이권을 챙겼죠.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주식회사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돌았습니다. 수하르토의 부정축재 규모는 마르코스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가 2009년 천수를 누리고 사망할 때까지 재산은 환수되지 않았습니다.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돈을 갚지 않거나 세금을 탈루한 그의 여섯 자녀에 대한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죠. 인도네시아 정치권이 수하르토 일가와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치권의 애매한 태도가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찾기로 작심한다면 필리핀의 경우처럼 스위스에 꿍쳐둔 일부라도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쫓겨난 권력이니 뭘 어쩌겠느냐 하는 부적절한 측은지심은 한 사회의 법치와 공정성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환수를 "본인의 뜻에 맡기자"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말은 그래서 부적절합니다. 지난 20여년 세월동안 한국의 정부는 그의 재산 환수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노력은 마치 시험기간에 다 닥쳐서 하는 벼락치기 공부와도 비슷합니다. 낙제점을 얻은 뒤에 "그래도 난 공부는 했어"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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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