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볼수록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승리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 푸틴을 ‘러시아의 박정희’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두 사람은 모두 권부 출신으로 국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그렇다면 결말은 어떻게 될까. 3선금지 헌법을 형식상으로나마 존중한 푸틴은 4년간 ‘실세’ 총리로 물러났다가 복귀하면서 2024년까지 장기집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3선개헌·유신체제 수립으로 종신 대통령을 노리다가 파국을 맞은 박정희 같은 무리수는 두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겉은 민주주의, 내용은 권위주의인 푸틴식 관리 민주주의 체제에 러시아 국민이 넌더리를 내기 시작한 상황에서 정적 제거와 언론통제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구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은 2000년 대선을 발판삼아 크렘린궁에 발을 들였다. 구소련 붕괴 이후 혼란기를 강력한 아버지와도 같은 지도자가 통제해주길 바라는 대중의 판타지를 러시아 지도부가 간파한 덕이었다. 이 ‘유능한 마초 지도자’의 판타지는 보통 전근대성을 벗지 못한 국가에서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불법성을 무마하려 가부장적 지도자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여러 한국 정치인들도 이 판타지를 애용해왔다.

집권 이후 경제성장도 닮은꼴이다. 러시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2011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하며 1만3000달러를 돌파했고, 중산층은 노동인구의 약 40%로 늘어났다. 구소련 붕괴, 1998년 금융위기로 추락하던 경제를 되살린 푸틴은 러시아의 자존심을 구한 영웅이었다. 사실 운이 좋았다. 집권기에 유가가 치솟았고, 막대한 오일머니가 러시아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기의 산업화가 신화화되고 과대평가된 것처럼, 푸틴의 경제실적도 부풀려져 있다. 하지만 러시아 유권자들은 원유산업에 치중한 기형적 경제구조를 문제삼지 않았다. 박정희가 보릿고개에 마침표를 찍은 지도자로 기억되는 것처럼 푸틴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로 받아들여진다. 

부패 문제도 그렇다. 푸틴은 집권 2기(2004~2008년)에 재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등에 업고 민영기업들을 상당수 국유화한 뒤 충성파에게 경영권을 넘겨줬다. 박정희가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몰면서 자진헌납 방식으로 재산을 몰수한 것과도 비견할 수 있다. 

패거리 정치에는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확보하려면 황금알 낳는 기업을 손에 넣어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천연자원·군수회사가 그 ‘거위’이고, 한국에서는 정부 특혜로 수출산업을 주도한 대기업이 그 역할을 했다.


한번 싹튼 시민의식을 자르기란 봄을 땅에 파묻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푸틴의 현명한 집권 3기를 세계 각국이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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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