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투르크 제국에는 ‘데브시르메’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총명하고 잘 생긴 열살 남짓한 소년들을 각지에서 ‘보쌈’해 데려온 뒤, 교육을 시켜서 재상과 군지휘관, 지중해를 호령한 군단 ‘예니체리’ 등으로 양성한 것이다. 소설가 이보 안드리치는 <드리나 강의 다리>에서 그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뽑힌 아이들은 보스니아산 조랑말에 태워 긴 행렬을 이루게 했다. 말마다 과일자루 같은 것을 양쪽에 하나씩 달았는데 여기다가 아이들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조그만 보따리와 둥그런 과자를 한 개씩 갖고 있었으니 이 과자야말로 부모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아이를 공납해야 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했겠느냐만, 이 제도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장수 비결이었다. 새로운 인재를 지속적으로 충원하는 방식으로 강력한 술탄의 권력을 유지한 것이다. 끊임없이 밭을 갈아엎어 풍작을 내는 농사와도 같았다. 변방 농촌의 아이들에게는 이 제도가 신분상승의 사다리였다. 


데브시르메가 끝난 것은 예니체리의 아들들이 점차 고위 관리직을 대물림받기 시작하면서였다. 귀족계급으로 등장한 이들은 결국 1703년 이 사다리를 차버렸다. 경쟁이 사라진 기득권은 물렁해졌고 거대한 오스만투르크는 1922년 결국 무너졌다. 

인재의 선발 방식은 이처럼 한 제국의 흥망을 결정짓기도 한다. 인재풀이 커지면 좋은 인재의 발굴 빈도도 커진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심지어 전 지구적으로 인류가 일궈낸 폭발적인 진보가 오직 인구 팽창에서 기원했다고 믿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모여서 더 심오한 진보를 이뤄내고, 맬서스의 비관적인 ‘인구론’을 뛰어넘는 인구증가와 번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많은 이들이 많은 ‘혁신’을 만드는 것이 인류 발전의 핵심인 셈이다. 이는 현재 후기 자본주의에 들어선 각국이 인재를 길러내고 선발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대학교육 비용은 급등세고, 이를 가족들의 부담으로 감당하더라도 젊은 세대를 수용할 일자리는 충분치 않다.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한국에 대해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내놓은 지적은 곱씹을 만하다. 재벌기업들이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질식시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기업들이 벤처업체의 머리 좋은 인재들을 낚아채 평범한 직장인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말처럼, 한국은 다양한 계급에서 뛰어난 인재를 가려내 혁신을 창출하는 구조가 상당히 취약하다.

한 사람의 몸에 있는 수소 원자들은 7년마다 완전히 바뀐다고 한다.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물과 음식이 몸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의 인적 ‘편식’도 한 사회로서는 좋을 리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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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