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이야기

기자칼럼 2013.09.12 09:35

홍익대 근처 한 카페. 늦여름의 아스팔트가 꽤나 뜨겁던 날이었다. 가게 문이 빼꼼 열리며 80대 노인이 들어섰다. “물 한 잔만 안될까요.” 통유리창 밖, 노인이 끌고 온 손수레에는 폐지와 빈 깡통들이 가지런히 층층으로 쌓여 있었다. 등이 굽고 마른 노인의 밥벌이였다. “잠깐 기다리세요.” 카운터 뒤로 점원이 사라졌다. 잠시 뒤 나타난 그는 양손에 물 한 잔과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고 있었다. “드세요.” 노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잘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노인의 아이스커피에 담긴 얼음은 금세 녹았겠지만, 이 광경의 작은 감동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머물렀다. 


선행은 친절을 주고받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곁에서 보는 이들에게도 행복감을 선물한다. 노점상 할머니가 폭염에 쓰러질까봐 단속 대신 팔던 과자를 모두 사줬다는 서울 경찰의 이야기, 미라 같던 유기견을 거둬 1년 만에 아름다운 사모예드의 모습을 되찾아준 중국 여성, 산불로 탈진한 코알라에게 물을 먹여주는 호주의 소방관을 비롯한 미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타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왔다. 


 

선행 연예인 신애라 (출처 : 경향DB)



사람들은 왜 선행을 좋아할까.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건조하게 주장한 것처럼, 종 개체를 넘어 집단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이타적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도록 ‘프로그램’된 것일 수 있다. 이기적 개체로만 구성된 종은 협동을 도외시한 탓에 생태계 경쟁 속에 도태됐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구성원을 벌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낀다는 심리학 이론도 있다. 설사 그 과정에서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하더라도 공동체의 ‘선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교류도 이 같은 본능적 선의 덕에 활발해졌다. 20세기에 권위를 누렸던 백과사전 ‘브리태니커’를 누르고 21세기 인터넷 시대의 주요 참고자료로 자리잡은 ‘위키피디아’의 항목들은 누리꾼들의 자발적 참여로 내용이 채워지고 수정돼왔다. 지식노동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없더라도 내가 아는 것을 기꺼이 공유하고자 하는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는 오늘도 자신이 접한 새로운 이야기들, 알찬 정보를 공유하고 잘못된 정보는 걸러내려는 이용자들로 붐빈다. ‘공명심’이라는 작은 단어로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 마음을 담아내기는 어려워보인다. 지식 공유가 또다시 지식 공유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마치 타인의 선행 이야기를 들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콘퍼런스 (출처 :경향DB)


다만 이 같은 선행의 본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디자인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0년 천안함 인양작업에 팔을 걷었던 어민들이 피해보상을 받지 못했다거나, 내부고발자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사례가 누적된다면 좋은 일 하기 힘든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민영 인터랙티브팀장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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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