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라!

기자칼럼 2014.05.16 21:00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명이 넘치는 맑은 샘이 지구 어딘가에 있었다. 모두가 이 샘물의 축복을 누렸다. 그런데 욕심 많은 사람들이 접근을 통제한다. 울타리를 치고, 샘을 둘러싼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급기야 특정한 엘리트계급만 샘물을 마실 수 있도록 제한했다. 화가 난 샘물은 그곳을 떠났다. 사람들은 악다구니 같은 권력 다툼에 샘물의 효능이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몇몇의 용감한 사람들이 샘물의 새로운 자리를 찾아내는데, 불행히도 앞의 바보짓이 무한 반복된다.

이 이야기는 월가의 ‘닥터 둠’으로 유명한 마크 파버가 <내일의 금맥>에 적은 투자시장의 속성을 설명한 우화와도 일맥상통한다. 대나무 받침대 위 높은 곳에 커다란 접시가 걸려 있고, 그 위로는 물(중앙은행의 화폐)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코끼리떼로 비유되는 투자자들이 있다. 코끼리떼가 움직이는 곳으로 접시의 물은 흘러넘친다. 그래서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은 언론, 정치, 경제 엘리트를 이용해 코끼리떼를 한쪽으로 몰고 간다. 그렇게 접시의 물이 한곳으로만 쏟아지면서 부동산이든, 원재자든, 채권이든 ‘대형 호재’라고 소문이 난다. 그 순간 거품 붕괴라는 몰락이 시작된다.


경제학자 마크 파버가 강연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위의 두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변주돼왔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인간의 복잡한 뇌는 ‘자동 시스템’과 ‘숙고 시스템’의 두 가지 인식체계로 작동한다. 공이 날아오면 피하고 귀여운 아기를 보면 미소짓게 되는 직관적이고도 신속하고 무의식적인 ‘자동 시스템’에 비해 ‘숙고 시스템’은 에너지가 많이 든다. 문맥을 파악하고, 토론하고, 복잡한 논리를 스스로 정립한다. 인체에너지의 20%를 사용하는 뇌는 신뢰할 만한 타인의 결정을 따르는 게으른 방식으로 ‘숙고 시스템’에 들어갈 에너지를 절약한다. 효율을 위한 진화인데, 특히 현대사회처럼 사회 각 부문이 세분화·다변화된 상황에서 항상 논리적으로 요모조모 따져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행동경제학의 발명가 리처드 탈러가 말한 ‘넛지’는 이 같은 맥락과 닿아 있다.

두 이야기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속성은 ‘외로움’이다. 발달심리학자 존 볼비는 “자기 무리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중략) 매우 큰 위험을 초래한다. 따라서 모든 동물이 고립을 피하고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본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고립을 곧 사회적 고통으로 인식한다. 맹수의 날카로운 발톱과 뱀의 독니를 피하기 위해 무리짓던 선사시대의 습성이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99명이 ‘그렇다’고 할 때 ‘아니다’라고 다수에 이의를 제기하는 1명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무리에서 소외될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1명은 당연하다고 여겨져온 것들에 대해 ‘왜?’라는 의심을 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방인처럼 바라볼 것이다. 값비싼 사치품들의 가격이 불황기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가치가 아닌 인간의 허영심에서 비롯됐음을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이 간파했듯이 완전히 다른 시선을 갖고 용기내어 질문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규칙을 쓰고, 다른 방식의 삶, 다른 방식의 사회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하라. 바닥이 쩍쩍 갈라진 샘물터 같은 이 나라의 개발주의, 아이들을 오로지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기계의 부품으로 가공해내는 교육체제, 선거를 앞두고 설탕 바른 혓바닥으로 유권자를 농락하는 그들을 의심하라. 그리고 ‘미개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하자.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규칙을 써나갈 것이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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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