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

기자칼럼 2014.10.31 22:00

심하게 체해 동네 병원을 찾았다. 병상에 누워 똑똑 떨어지는 노란 포도당 링거 주사를 맞고 있자니 진료실의 대화가 아득하게 들렸다. 환자 중에는 노인이 많았다. ‘어디가 아프세요’라는 의사의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 복용했던 약과 겪은 수술을 굽이굽이 거쳐 요즘은 밥을 잘 못 먹고 요기가 결리고 저기가 쑤시고 같은 통증의 호소로 이어지고는 했다. 상냥한 의사와의 대화는 ‘고맙다’는 인사로 마침표를 찍었다. 노인의 목소리는 한결 밝아진 듯했다.

이 나라에서 노인들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프고, 돈도 없고, 외롭기까지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만성질환이 없는 경우는 100명 중 5명도 채 되지 않는다. 노인가구 절반 이상의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친다는 한 경제연구원 보고서도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최근 성인 우울증 보고서를 들춰보면 70대 노인 100명 중 18명, 60대 노인은 100명 가운데 15명이 최근 1년간 우울증을 경험했다.

은퇴 이후 자신이 쓸모없어졌다는 허탈감과 무기력감에 깊이 갇힌 노인들은 탈출구로 자살을 생각한다. 65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통계조사도 있다. 하지만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지 못하는 부모상을 실패로 여기는 유교사회의 영향인지 이들은 선뜻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려면 생의 패배를 스스로 선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에 선뜻 공감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화가 나는 것조차 자신의 지식범위 안이라는 말처럼, 경험해보지 않으니 모르는 걸까. “콩다방 별다방 같은 젊은이들의 카페에 노인들이 자리하는 게 불쾌하다”는 볼멘소리마저 한다. 공공 공간에서마저 노인은 ‘침해의 당사자’로 소외된다. 마치 백인 전용 공간에서 흑인이라도 만난 듯한 차별이다.

정치지형에 있어서도 노인들은 ‘수구세력의 콘크리트 지지층’쯤으로 치부된다. ‘독재자 박정희’를 영웅시하는 노인들이 사실은 땀 흘려 가난을 벗어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은밀히 애도하고 있다는 점을 진보성향 젊은이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박근혜 대통령을 ‘모욕’한 산케이 신문에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노인들이 단순히 ‘알바 일당’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가늠하지 못한다.

길을 따라 걷는 노인들 (출처 : 경향DB)


한국의 문화와 소비 중심이 온통 ‘틴팝 컬처’, 즉 10~20대의 아이돌 문화가 중심이라는 점 역시 노인세대의 소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짧고 찬란한 젊음을 찬양하는 소비주의 속에 노인이 설 자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동안’에 대한 무한한 찬사가 재생되는 미디어 공간에서 노인들은 생체시계의 태엽 무게에 굴복한 패자가 될 뿐이다. 외모를 관리할 충분한 물적자본과 시간을 가진 연예인들을 통해 노화에 대한 공포를 물리치고 대리만족하는 대중에게 있어서 노인은 한없이 매력 없는 존재다. 그나마 노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미디어는 종합편성채널이다. 뒷방 늙은이 취급 받던 세대에게 100% 귀기울이면서 주연으로 모시는 거의 유일한 매체 아닌가.

내가 만약 노인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불현듯 프랑스 출장 때 만났던 한 70대 파리지엔 할머니가 생각난다. 영어로 자신의 의견을 또렷이 말하던 그녀는 말끝마다 끄덕이는 나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그의 표정에서 외로움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최소한의 정서적 요구인 소통에서마저도 습관처럼 소외되는 것이 노인의 운명인가. 그렇기에 노인 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고 귀기울여주는 누군가이다. 아파서도, 가난해서도, 외로워서도 아니라 그저 사람이기 때문에.


최민영 미디어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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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