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돈이 생긴다.” 지난달 서강대 강연에서 한 정치인이 주장했다.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출산지원금 20만원이 나온다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다. 많은 청년들이 이 발언에 분노했다. 청년실업률이 9%에 육박하는 데 대해 집권당 관계자로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그의 발언은 청년들을 향한 ‘어르신들의 꾸지람’ 중 한 사례에 불과하다. 비슷한 얘기들이 우리 사회에는 횡행한다. “젊은이들이 편한 일자리만 찾는다” “그들이 가난한 것은 소비성향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부류의 기만적 레토릭들이다.

인생 선배랍시고 이 같은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이들은 대개 안정적 삶을 누리는 50대 이상의 중장년 세대이다. 산업화시대에 학점이 바닥을 기었어도 취업기회는 열려 있고, 재산을 모을 여유도 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말의 무게가 허망하다. 그들이 자랑하는 성공의 비결은 현재의 결과에서 거친 귀납법으로 뽑아낸 것들이 불과한데, 보편적인 것인 양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에 불과하다. 그 기저에는 타인을 조종하려는 은밀한 나르시시즘과 싸구려 인정욕구가 깔려 있는 건 아닐까. 고분고분 말을 듣고도 실패해도 ‘그건 너의 탓’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그만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하면 된다’식의 낡은 방식을 대입하기에는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환경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경제학자 마이클 멘델은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경제성장은 혁신을 통해 이뤄지지만 최근 “제약, 로봇, 인공지능, 나노기술 모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진전을 이루지 못한 분야”이다. 정보통신(IT)을 비롯한 최근의 혁신들은 과거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과 달리 일자리가 크게 늘지 않는다. 취업자는 줄어드는데 소비자는 필요한 자본주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태어나서 대체로 고성장 시대를 산 중장년층과 달리 20대 청년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저성장 속에 살 가능성이 높다. 이는 ‘4인가구’ 핵가족으로 상징되는 고도 성장기의 각종 사회적 룰이 변화의 압력에 놓인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취업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고 타박할 수 있을까.

‘하면 된다’는 어쩌면 ‘수탈’을 최적화하기 위한 담론이다. 아르바이트로, 인턴으로, 수습으로, 비정규직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면 구직의 문이 열릴 것이고 안정적 일자리라는 미래를 얻을 것이라며 희망을 눈앞에 딸랑이는 식이다. 그렇게 노동을 착취해서 이득을 얻는 이들이 대체로 담론을 유포하는 이들과 겹친다는 점에 있어서 이는 사기에 가깝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청년들에게는 ‘개인의 실패’라는 딱지가 간편하게 붙는다. 수치심을 안은 청년들은 침묵하고 만다. 취업을 하더라도 집을 얻고 가족을 꾸리는 수준의 소득을 얻기는 난망하다.

1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 업무보고 및 경제혁신 3개년 계획 2차 회의에 참석한 정부부처 및 기업, 대학 등 관계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출처 : 경향DB)


가장 큰 잘못은 정부에 있다. 국가의 한 세대 뒤 미래를 내다본다면 젊은층을 이렇게 착취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재정과 복지, 노동정책을 짜는 관료들은 온통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1970년대 산업화시대의 논리에 푹 절여진 듯하다. 급속한 인구고령화가 국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면서도 기업들의 법인세는 못 올리겠다는 식이다. 현상을 거칠게 한마디로 하면 ‘재벌에 점령된 수탈적 경제체제’나 다름없다. 식민지처럼 한 나라의 에너지와 노동력을 털어먹고 상품이나 팔면 그만이라는 식인가.

게다가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고령화사회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득하다. “10여년 일찍 태어난 게 요즘은 죄스러울 정도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40대 초반 직장인의 고백을 듣고 나니 생각은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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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