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의 'IS-페미니즘' 칼럼에 이어 4월에는 개그맨 장동민의 '옹꾸라 ' 인터넷 라디오 여혐 발언이 논란이 됐다. 발언 수위는 충격 자체였다. "여자들은 멍청해서 과거의 성경험을 이야기한다" "개 같은 O" "창녀" 등등... '된장녀'나 '김치녀'같은 혐오 표현이 그나마 앙증맞게 느껴질 정도의 수준이었고,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반발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장동민은 MBC <무한도전>의 유력한 식스맨 후보로 꼽히다가 자진 하차했는데, 그 과정에 대한 '아니꼬운' 남성 일각의 시선은 이렇게 나타나기도 했다. (장동민이 군대 후임이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괴롭혔다는 내용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다.)





'옹꾸라'가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기 때문에 방송심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던지, 그래서 더 과격한 표현이 등장했다던지 하는 문제는 일단 접는다고 하더라도,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여성혐오' 콘텐츠는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있다. 이에 대해서 문화웹진 아이즈가 분석하면서 4월 방송된 콘텐츠 중 여러 사례들을 들고 있다. 아래의 인용은 그 중 하나이다. 




돈 없고 인기 없고 가진 것 없는 복학생 병재(유병재)는 남성임에도 상대적 약자인 경우가 있다. 그런 병재에게 몰려와 밥 사달라 조르고, 월세 낼 돈도 없는 그로부터 잔뜩 얻어먹은 뒤 “오빠 같은 남자랑 사귀고 싶다” 따위의 마음에도 없는 멘트를 늘어놓으며 휑하니 가버리는 후배들은 전형적인 ‘무개념’ 캐릭터로 소비된다. 병재에게 상냥하게 대했던 연주(정연주) 역시 남자친구와 함께 그를 비웃으며 “병신은 컴퓨터 버그 잡을 때 말고는 쓸모가 없어”라고 말한다. ‘명품 백 사달라고 들볶는 여자친구 이야기’와 함께 일종의 도시괴담처럼 떠돌곤 하는 ‘남자를 호구로 알고 등쳐 먹는 어린 여자 이야기’는 이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손쉽게 재생산되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혐오를 부추긴다. 결국 초능력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간 병재는 같은 상황에서 “다 처먹어, 이 씨 X년들아!”, “(컴퓨터) 껐다 켜, 이 썅X아!”라고 분노를 폭발시키는데, 애초에 그냥 거절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여성혐오 콘텐츠는 끊임없이, 별다른 통제나 자기성찰 없이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것인가?

 '돈'이 되고, 팔리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콘텐츠는 남자들이 본다. 케이블 XTM에서 주로 방송하는 내용이랄지, 기계와 모험에 피가 끓는 남성 취향의 콘텐츠들이다. 그리고 여성 중심의 콘텐츠는 여자들이 주로 본다. '겟잇 뷰티'같은 TV쇼가 그런 범주의 대표일 것이다.

 그런데 '여성 혐오' 콘텐츠는 남성과 여성이, 각기 다른 목적이지만, 결국은 같은 화면을 본다.


 남성의 경우, 남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용도로서 '여혐' 콘텐츠를 소비한다.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 <여성혐오를 혐오하다>에서 지적했듯이, 남성들에게 여성을 배제하는 행위는 남성 집단에 소속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남성들은 어떤 특질들- 예로, 유약함, 부드러움, 감정적, 의존성-을 여성의 것으로 정의내린 뒤 그 특질을 가질 경우 남성이라는 집단적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 구성원으로 딱지붙인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같은 특질들을 억압하고 부인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에게는 부정적인 속성들이 투사된다.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이 그런 특징을 보인다.

 

 예로 '군대 예능' 속 여성들은 남성의 고유한 범주와 능력의 기준에 미달 또는 간신히 통과하는 여성이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등장한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공통적인 경험이자 정신적 상흔, 소중한 청춘의 시간을 징집으로 빼앗겼다는 박탈감을 주는 군대의 경험을 여성에게 체험하도록 만든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해 포기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여성의 스펙터클은 남성성을 '그 무엇'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극심한 사회환경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제가 심해지는 것처럼, 여성 역시 남성 중심 취업시장에서 배제의 대상이 된다. 1997년 IMF 이후 비정규직만 잔뜩 늘어난 노동시장에서 그나마 일자리 하나 잡기도 어려워 청년 실업률은 10%를 이미 넘어섰다. 부모 세대같은 연애결혼이나, 일부일처제 핵가족은 아마 앞으로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같은 가족모델은 경제 고도성장기에나 가능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면 데이트도 어렵다. (1960년대 영화에서는 '데이트 비용이 없으면 여자친구에게 몸이라도 팔라고 해'라는 건달의 대사도 간혹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남성들은 경제와 사랑에 있어서 모두 여성에게 '배제' 또는 '위협'받고 있다는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아닌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객관적 지표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의사결정 분야에서의 남녀 성평등 지수는 21.2이며 여성의 '유리천장지수'도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꼴찌다.



장동민은 “(한헤진이) 내가 싫어하는 걸 모두 갖췄다. 나도 혜진 씨가 싫어하는 걸 모두 갖췄다”고 말을 이었다. MC들이 “한혜진의 어떤 점이 싫냐”고 묻자 장동민은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아무튼 모든 걸 갖췄다”고 답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기사출처: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62701




 여성의 경우, 여성으로서 어떤 여성이 되어서는 안되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서 '여혐' 콘텐츠를 소비한다.

 '오크녀'나 '무개념녀'로 등장하는 여성들은 "나는 그런 여성이 아니다"라고 여성이 혐오하기 위한 존재이다. 남성이 혐오하지 않고 '욕망'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 몸가짐을 어떻게 바로 해야하는지에 대한 은근한 '계몽'의 맥락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 지적했듯이 여성들은 '나는 그런 여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남성에게 확인받음으로써 '명예남성'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런데 그 명예남성이라는 지위는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고 기준이 바뀜에 따라 언제든 '박탈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여성혐오'의 범주에 들지 않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보수집'과 '자기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여성 혐오' 콘텐츠는 남녀가 모두 소비하는 양태를 띠게 된다. 여성 중심 콘텐츠는 남성이 안 보고, 남성 중심 콘텐츠는 주로 남성이 보는데에 비해 '소비자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시장의 특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시장이 넓으면 넓을 수록 시청률이 높아지고,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양적 성공에만 집착하기 시작하면 콘텐츠에서는 철학이 제외되고, 온기가 사라지고, 오로지 '팔리기 위한 존재'로서 도구화되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시청률은 방송사의 절대지표지만, 절대지표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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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