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전화와 인터넷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전직 중앙정보국 직원의 폭로를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죠. 지구촌의 주요 내부고발자들의 활동과 그 의미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역사상 중요한 내부고발자들 하면 떠오르는 이들이 있죠.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72만건의 미국 외교전문가 군사 문서를 넘긴 브래들리 매닝 미 육군 일병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10년 체포돼 현재 재판 중인 그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미군의 만행을 폭로하고자 했다"고 밝혔죠. 미국 닉슨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진 워터게이트 사건도 내부고발자가 없었더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1972년 미국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괴한이 체포됐는데, 그 배후에 백악관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제보한 이는 '딥스로트'로만 알려졌어요. 30년이 지난 뒤에야 미 연방수사국의 부국장을 지낸 마크 펠트로 밝혀졌죠. 1971년 미국 내에서 베트남 반전 운동에 불을 지핀 펜타곤 페이퍼를 언론사에 건넨 이는 당시 국방부 소속 군사전문가인 대니얼 엘스버그였습니다.



호루라기를 부는 자, 그대의 이름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 사진출처:mediafreedominternational.org


 

-기업들 내에서도 내부고발의 사례가 적잖았어요.

 회계부정으로 무너진 미국의 기업 중에는 엔론을 꼽을 수 있죠. 이 기업의 부회장이었던 셰런 왓킨스는 엔론이 7억달러 규모의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결국 엔론은 2002년 파산보호신청을 내게 됐죠. 비슷한 시기였죠. 미국의 주요 통신회사인 월드컴이 38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이사회에 폭로했던 이는 이 회사의 내부감사였던 신시아 쿠퍼였습니다. 미국의 한 담배회사 임원은 이 회사가 담배의 중독성을 강하게 하려고 니코틴양을 늘린 사실을 폭로해서 회사의 추악한 이면을 세상에 알린 바 있습니다.

 

-최근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조세피난처 뉴스 역시 내부고발자의 작품이죠.

 호주의 한 언론인이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를 우편으로 받았는데, 여기에는 버진아일랜드와 케이맨군도 등 조세피난처에 있는 유령회사 12만여개와 전세계 170여개국의 기업가와 정치인들 13만명의 거래내역이 담겨있었죠. 50만권 분량에 해당하는 이 자료 가운데 한국 부분 자료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를 통해 건네받은 뉴스타파가 보도를 이어가고 있죠. 누가 보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구요.


 

-이처럼 용감한 내부고발은 보상을 받기도 하죠.

 내부고발자에 대한 가장 최근의 장려책은 미국 금융감독법인 도드프랭크법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으로 벌금의 10%에서 30%까지, 그러니까 최대 수백만달러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제대로 신고할 경우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이죠. 그래서 내부문서나 음성녹음을 통해 기업 내부 회계부정과 시장조작 등을 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하네요.



2002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인물로 꼽힌 내부고발자들. 월드콤, 엔론 등의 기업비리를 고발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자신의 사회적 삶을 포기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지 않나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의 시발점이 된 통킹만 사건이 전쟁을 통한 수익을 노린 군수업체들의 로비의 입김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의 경우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미 검찰에 기소되면서 고초를 치렀죠. 역시 위키리크스에 미 외교전문을 건넨 매닝 일병 역시 20년형 상당의 징역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1986년 이스라엘의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언론에 폭로한 이스라엘의 비밀 핵시설 기술자인 모르데차이 바누누는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소속된 조직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포기하는 것까지 각오한 거죠. 



 

-조직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징계를 받는 것이죠.

조직의 비리를 폭로할 정도라면 그 조직에서 중요한 직위를 보장받는 위치까지 오른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필요로 하죠. 기업비리를 내부고발한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기업에서 섣불리 채용을 하려 들지도 않는 게 사실이구요. 미국은 남북전쟁 당시인 19세기 말에 군납비리를 잡으려고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두고있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보호는 또 별개의 문제죠. 국가 이익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기소하는 경우가 많구요. 이번에 미국의 시민감시 프로그램인 프리즘을 폭로한 전 CIA 요원 스노우든 역시 미 검찰의 기소를 피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중국이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의식해서 그의 신병을 넘길 가능성이 제기되죠.

 


-불현듯 우리나라는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우리나라에는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습니다. 부패방지법이 있지만 공공기관과 공직자에 한정되기 때문에 민간 분야로 확대하려고 보완한 법률이죠. 내부고발자라는 단어가 부정적이라고 해서 공익신고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는 이 공익신고자들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죠. 2009년 국방부 계룡대의 납품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소령은 내부고발자라고 찍혀 전역해야 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용기로 권력을 남용을 막는다는 점에 있어서 내부고발은 한 사회의 건전성을 지키는 데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한 사회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내부고발은 자기반성과도 같죠. 일부 학계에서는 사회적으로 부정의한 일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벌하고자 하는 욕구를 사람들이 갖는 것은 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어떤 사회적 본능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민간인 정보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우든의 경우에는 여전히 미국 사회가 스스로를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건강한 징후로도 읽을 수 있겠죠. 물론 그가 기소, 처벌되지 않는다면 더 훌륭하겠구요.

 

저작자 표시
신고

'자세히 본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부고발자들  (0) 2013.06.12
세계 독재자들의 재산 환수  (0) 2013.06.07
터키 시위사태 일문일답  (7) 2013.06.04
에르도안, 터키의 이명박 되나  (1) 2013.06.02
이탈리아 총선 전망  (0) 2013.02.24
미국과 유럽연합, FTA 협상의 의미  (2) 2013.02.15

Posted by 최민영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환수 작업이 본격화됐습니다. 

그의 두 아들의 이름도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오르내리죠. 

국제사회에서 그간 벌어진 독재자의 재산환수 노력을 기존의 보도들을 토대로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독재정권이 무너질 때에는 예외없이 독재치하에서 빼돌린 재산이 화두가 됩니다. 가장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1년 아랍 민주화 혁명을 계기로 도미노처럼 무너진 중동의 독재자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독재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대부분 국민경제에 원래 돌아갔어야 할 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기업의 이권에 개입하거나 사업비용을 부풀리거나 황금알낳는 기업을 보유하는 방식 등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해 해외로 빼돌리죠.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드러난 독재자들 역시 그랬습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총 805000만달러, 9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스위스와 프랑스 등지에 보유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30년 장기집권 끝에 물러난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빼돌린 재산은 700억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피 중 피살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몰래 숨긴 재산이 2000억달러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독재자들이 빼돌린 재산은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독재자들이 해외로 빼돌리는 돈이 연간 400억달러이고, 은닉 재산은 14000억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도 포함돼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독재자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최근의 중동사례의 경우에는 국제사회의 협조 하에 착착 진행됐습니다. 혁명 이후 이들 국가를 다시 민주주의로 복원하고 재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독재자들의 숨겨진 '돈주머니'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 서방국가들 입장에서는 숨은 재산찾기에 적극 협력해야할 필요가 있었죠. 무바라크의 재산의 경우에는 영국 수사당국이 재산추적을 벌였고 스위스 정부는 무바라크 일가의 자산을 동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돈세탁이나 외국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합법성을 얻은 경우도 있어서 추적이 쉽지 않다고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독재자들의 은닉계좌 얘기가 나오면 스위스가 빠지지 않습니다. 

 중립국인 스위스 은행들은 오랫동안 누가 어떤 돈을 맡겨도 출처를 묻지 않는 사업관행을 유지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도 옛 얘깁니다. 유엔은 2007년에 개도국의 부패한 지도자나 관리들이 빼돌린 국가자산을 환수하도록 돕는 계획을 만들었는데, 이에 따라 스위스는 2011년 독재자 재산환수법을 마련해 발효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중동 독재자들의 숨겨진 재산도 꽤 빨리 계좌동결 조치 등이 취해졌죠. 



스위스를 사랑한 독재자들



 이렇게 환수한 돈은 독재 치하의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필리핀은 지난 3월 독재시절 자행된 고문과 구금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전 독재자의 계좌에서 몰수된 비자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1972년 계엄령으로 필리핀 정권을 장악한 페르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혁명을 계기로 하야했는데, 그의 집권기에 불법 감금 및 고문을 당한 피해자는 시민운동가와 기자 등을 비롯해 9500명이 넘습니다. 필리핀은 그가 하야한지 26년 만인 올해 3, 마르코스의 스위스 계좌에서 몰수한 비자금 2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2180억원을 이들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같은 법안에 최종적으로 서명한 아키노 대통령은 마르코스 정권기에 암살당한 활동가의 아들이자 1986년 당시 민중시위를 주도한 고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아들이죠. 

 

 필리핀이 26년에 걸쳐 환수한 마르코스의 재산규모는 10억달러입니다. 그가 집권기에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00억달러의 10% 수준에 그치죠. 마르코스는 집권 전부터 스위스 등지에 이름 뿐인 재단을 만들어 해외로 재산을 은닉했는데상당부분을 환수하지 못한 겁니다.



여보, 우리 가문 곧 다시 일어날 거에요.



 그런데 필리핀은 이 빼돌린 재산찾기 작업을 최근에 중단했습니다. 

 지난 1월 발표였는데, 재정긴축 하에서는 부정축재 재산을 찾는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워라고 필리핀 정부는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 언론들의 해석은 다릅니다. 마르코스 일가가 정치가문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기 시작하면서 정부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고 있죠. 지난달 실시된 필리핀 선거에서 전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으로 사치벽으로 악명을 떨쳤던 이멜다는 하원에 당선됐고, 아들 마르코스 2세는 상원 배지를 달았습니다. 딸 이미는 주지사로 선출됐구요. 3년 뒤인 2016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2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동과 필리핀의 사례를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독재자의 숨겨진 돈을 찾는 데 적극적이냐 아니냐는 여론과 정치구도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중동의 경우 독재자가 축출될 정도로 강력한 민중혁명이 있었고, 또 사회 재건의 필요성에 개입 당사자인 서방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환수작업이 여러 암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중입니다. 반면 필리핀의 경우에는 마르코스 가문이 부활할 수 있을 정도로 기득권층 세력의 은밀한 지지가 유지돼왔습니다. 아키노의 개혁정책이 못마땅한 보수세력들이 마르코스 가문을 지원하는 거죠


 젊은 세대가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필리핀 유권자의 3분의 2는 마르코스 독재 이후 태어난 이들입니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죠. 이에 필리핀 정부는 현대사 교육을 강화해 마르코스의 독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세대가 지나온 현대사를 통해 한 사회가 겪은 비극과 실책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하자는 게 바로 역사교육이 필요한 이유니까요.

 

 기득권세력과 정치권의 의지부족으로 재산환수를 거의 당하지 않은 또다른 사례는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수하르토는 1999년 하야하기 전까지 32년동안 인도네시아를 통치했습니다. 그의 일가친척은 천연자원 풍부한 인도네시아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대부분 장악하고 이권을 챙겼죠.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주식회사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돌았습니다. 수하르토의 부정축재 규모는 마르코스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가 2009년 천수를 누리고 사망할 때까지 재산은 환수되지 않았습니다.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돈을 갚지 않거나 세금을 탈루한 그의 여섯 자녀에 대한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죠. 인도네시아 정치권이 수하르토 일가와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치권의 애매한 태도가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찾기로 작심한다면 필리핀의 경우처럼 스위스에 꿍쳐둔 일부라도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쫓겨난 권력이니 뭘 어쩌겠느냐 하는 부적절한 측은지심은 한 사회의 법치와 공정성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환수를 "본인의 뜻에 맡기자"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말은 그래서 부적절합니다. 지난 20여년 세월동안 한국의 정부는 그의 재산 환수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노력은 마치 시험기간에 다 닥쳐서 하는 벼락치기 공부와도 비슷합니다. 낙제점을 얻은 뒤에 "그래도 난 공부는 했어"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일까요. 


저작자 표시
신고

'자세히 본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부고발자들  (0) 2013.06.12
세계 독재자들의 재산 환수  (0) 2013.06.07
터키 시위사태 일문일답  (7) 2013.06.04
에르도안, 터키의 이명박 되나  (1) 2013.06.02
이탈리아 총선 전망  (0) 2013.02.24
미국과 유럽연합, FTA 협상의 의미  (2) 2013.02.15

Posted by 최민영

터키 시위에 관한 일문일답입니다. 우리시간 2013년 6월 3일 오후상황까지 반영돼있습니다. 


1. 터키에서 전국적인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이어지고 있죠.

우리나라와 형제의 나라로도 불리는 터키의 경제중심지 이스탄불 도심의 공원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 60여개 도시의 반정부시위로 번지면서 현지시간 2일까지 1700명이 연행되고 수십 명이 부상했습니다. 터키에서 이같은 규모의 시위는 십수년래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슬람 성향인 집권 정의개발당의 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집권 10년만에 최대위기를 맞았습니다.




 

1-2. 공원 재개발이 어쩌다가 반정부 시위로까지 이어지게 된 건가요.

시위가 시작된 게지공원은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과 인접한 곳인데, 지난 10여년간 과도한 도시개발이 계속돼온 이스탄불에서 시민들의 녹색쉼터가 돼왔습니다. 그런데 이 공공재인 공원을 밀고 기업의 이익을 좇는 쇼핑몰을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되자 시민단체들이 지난달 말부터 평화적인 공원 점거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를 터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지난 30일 폭력진압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간 에르도안 정부에 대해 쌓였던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탁심 광장으로 몰려나온 겁니다.

 

1-3. 이 탁심 광장은 터키 현대 민주주의의 심장부같은 곳이죠.

과거 오스만제국 당시 이스탄불 북부의 수원에서 흐른 물이 이곳의 저수지를 거쳐 도시 곳곳으로 흘러들었는데요. 탁심이라는 단어는 분배’ ‘나눔이란 뜻입니다. 광장의 중심에는 과거 독립항쟁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의 잔해 위에 1924년 정교를 분리하는 세속적 헌법 위에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국부 케말 아타투르크를 비롯한 국가수립 주요인사들을 묘사한 공화국 기념상이 서있습니다. 인접한 겐지 공원은 과거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제국 때의 포병연대 막사건물을 1940년대에 철거하고 조성한 것이죠.



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1-4. 그런데 이 겐지 공원에 오스만 시대의 포병연대 막사를 다시 지어서 내부는 쇼핑센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추진된 거네요.

. 이 지점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차적으로 시민의 공공재인 공원을 없애서 사적인 용도로 쓸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터키는 2002년 개발정의당이 집권한 이래 빠른 경제성장과 맞물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돼왔는데, 다소 과잉상태라죠. 터키 일간 후리예트는 이스탄불 내에서 쇼핑몰 11곳이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았다고 최근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또 쇼핑몰을 만든다고 하니 설득이 잘 안되죠.

 

1-5. 중요한 공사를 하면서도 시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거네요.

터키는 세계 최대 공항, 유럽쪽 이스탄불을 파는 운하계획 등 대공사 계획을 추진해왔지만,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동의는 딱히 구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공사들에 정경유착 혐의도 제기하죠. 몇 년전 언스트앤영이 실시한 조사에서 터키인 응답자 77%가 뇌물과 횡령이 터키에서 일상적이라고 꼽기도 했는데, 말하자면 과거 1980~90년대에 한국에서 신도시개발 등 대규모 공사에서 정치인들이 뇌물을 수수했던 것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1-5. 이번 시위는 터키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 충돌의 성격도 있죠.

세속주의에 바탕해 터키공화국을 세운 국부 아타투르크의 동상이 있는 광장 인근에다가 이슬람 사원을 짓고 오토만제국 시대 스타일의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은 탁심 광장 정신의 훼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거죠. 아타투르크는 의회민주주의와 이슬람문화, 세속주의를 조화시킨 터키 공화정의 바탕을 놓아서 세속주의라는 터키의 한 뿌리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반면 현 집권 정의개발당은 이슬람 정당입니다. 2002년이래 집권 초에는 그리 색깔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급속한 경제개발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2007년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터키 공화국의 균형모델을 흔들고 있죠. 최근에도 밤 10시 이후 주류판매를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 남녀같에 뽀뽀같은 애정표현을 금지하는 등 이슬람 성향의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위는 유럽과 아시아, 세속주의와 이슬람 사이에 걸쳐있는 터키가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충돌로 볼 수 있는 겁니다.




 

1-6. 에르도안 정부의 독재성향에 대한 비판도 적잖죠.

에르도안은 군부 중심이었던 터키 정치를 민간 중심으로 가져온 공적을 꽤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독재성향을 비판받죠.

우리 식으로 치면 종북집단비슷한 용례로 터키에는 에르제네콘이 있습니다. 집권 개발정의당을 뒤엎으려고 세속성향의 군부와 결탁한 조직을 뜻하는데요. 터키는 과거 군부 쿠데타가 여러 차례 있기는 했지만 이 경계가 탄압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죠. 지난 2007년부터 2011년 사이에만 400명 이상이 이 에르제네콘의 일원이라는 혐의를 받고 체포됐다고 합니다. 사법부의 독립성도 훼손됐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총리의 지시에 따라 검찰이 정부비판적 인사들을 무리하게 기소한다고 야권은 주장합니다. 20113월에는 9명의 언론인과 작가들이 집권 정당에 대한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체포돼 이중 7명이 수감된 사례가 있습니다.



 

1-7. 하지만 에르도안 총리는 별로 대화의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에르도안은 이번 시위를 비민주적"이고 "불법"이라고도 규정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원칙은 상대방과의 대화일텐데, 의회에서 다수당이니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건가 싶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화와 소통이 실종될 경우 당장 집권정당의 몸은 편하겠지만’, 한 국가의 정치는 나중에 밀린 카드값같은 바용을 치르게 되다는 점 아닐까요. 소통과 설득으로 해결할 도시 개발문제에 최루탄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제 때 해결했어야 할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만들지 않고 관리하지 않아서 빚어지는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저작자 표시
신고

'자세히 본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부고발자들  (0) 2013.06.12
세계 독재자들의 재산 환수  (0) 2013.06.07
터키 시위사태 일문일답  (7) 2013.06.04
에르도안, 터키의 이명박 되나  (1) 2013.06.02
이탈리아 총선 전망  (0) 2013.02.24
미국과 유럽연합, FTA 협상의 의미  (2) 2013.02.15

Posted by 최민영

라이벌 세력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가장 비용이 싼 방법은 무엇일까요. ‘딱지를 붙이는 겁니다. 한국으로 치면 종북주의자라는 냉전 풍의 딱지가 수 십년간 유효했습니다.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딱지를 붙여 소통의 수고로움과 타협의 번거로움을 피하는 거죠. 물론, 장기적으로 이는 사회에게 월말 카드값같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듭니다.

 

한국과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터키가 현재 이 월말 카드값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현지시간 지난달 30일부터 사흘째 경제수도 이스탄불의 게지공원의 개발반대로 촉발된 시위가 전국 60여개 도시에서 벌어지면서 2일까지 939명이 체포돼고 1000명 이상이 부상당했습니다. 엠네스티는 사망자도 2명 있다고 밝혔지만 아직 확인은 안됐죠. 터키에서 지난 수 년간 이 정도의 대규모 시위는 유례가 없습니다




 

게지공원은 이스탄불 도심에 있는 '탁심'(Taksim)광장과 닿아 있는 녹지로, 이 공원을 없애고 대형 쇼핑몰을 건설하는 개발계획이 추진됐죠. 지난 20년간 녹지를 쓸어버리는 급격한 도시화에서 이스탄불의 작은 허파같은 곳곳인 이곳의 개발에 반대하는 이들은 묘목을 심으며 평화시위를 벌여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30일 터키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마구잡이로 쏘며 강경진압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왜 분노했을까요. 사태의 핵심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개발주체가 정부도 아닌 사업에 왜 경찰이 개입했나.

   2. 왜 민주국가 터키는 왜 평화시위를 강경진압했나.



탁심 광장에 위치한 높이 11미터의 동상. 터키 현대화의 아버지 케말 아타투르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탁심 광장에서 닷새째 계속된 시위는 아타투르크가 제시한 '세속적 이슬람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터키 유권자들의 요구로도 볼 수 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터키는 1980년대 경제자유화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누렸습니다.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등 수니파 이슬람국가들이 민주화 이후 경제 성장모델로 터키식 개발모델을 꼽을 정도이죠. 하지만 급속한 성장은 정경유착과 부패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고전 중의 고전은 막대한 예산과 ()자금이 오가는 부동산 부문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터키의 선거 등 정치부문의 투명성은 높아졌지만, 건설부문을 둘러싼 횡령과 부패는 증가했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4월에는 공공주택사업을 담당하는 관료 2명이 뇌물수수 및 횡령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죠. 개발만 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부패관료들은 개발사업 허가를 남발했습니다. 터키 일간 후리예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스탄불 내에서 남발된 쇼핑몰 건설인허가 때문에 벌써 11곳이 한국의 가든파이브마냥 유령쇼핑몰이 됐습니다. 그런데 터키 당국은 개발난 속 오아시스같은 공공의 자산인 공원을 밀어 사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질 쇼핑몰을 짓겠다는 거죠. 근거가 빈약한 개발인 겁니다. 

집권 정의개발당(AKP)토건동맹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의 사위도 건설업자이고, 적잖은 당 관계자들이 부동산 등으로 이익을 얻었다는 거죠. (이 강력한 데자뷰....)

집권 세력이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시민 공공의 이익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게 현재 터키의 시위로 나타난 겁니다. 


 

평화시위 강경진압은 예상 가능했습니다. 터키의 민주주의의 후퇴 징후가 최근 수년 사이에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2003년 이래 10년째 장기집권 중인 에르도안 개발정의당 정부는 독재성향으로 기운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2007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후에 이같은 경향이 강해졌죠.



눈과 코와 목구멍이 매워지는 사진. 터키 경찰의 이번 시위 강경 진압은 국제적인 비난을 샀고, 온건 성향의 압둘라 귤 대통령이 이스탄불 시위진압 경찰에 철수를 명령했다.



1923년 터키를 건국한 케말 아타튀르크는 의회민주주의와 이슬람, 세속적인 시장정책 사이에 균형잡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도입했는데, 이슬람 정당인 개발정의당은 이 균형을 사실상 깼습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유럽연합(EU) 가입에 한 발짝 다가가는 성과 등에서 자신감을 얻으면서죠. 터키 정부는 최근 밤 10시 이후 주류판매 금지같은 이슬람 성향 정책을 도입해왔습니다. 반발은 적잖았지만 에르도안 총리는 오로지 불도저의 한 길을 걸어오면서 사회 분열을 '선도'한다는 비난도 들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간데없이 총리가 신호하면 검찰은 정부비판적 인사들을 무리하게 기소한다는 비판도 있죠. 20113월에는 9명의 언론인과 작가들이 집권 정당에 대한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체포돼 이중 7명이 수감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소된 이들이 수백명이라죠.

우리식으로 치면 종북집단비슷한 용례가 터키에서는 에르제네콘입니다. 집권 개발정의당을 뒤엎으려는 쿠데타 음모를 뜻하는데요. 2007년부터 2011년 사이에만 400명 이상이 이 에르제네콘의 일원이라는 혐의를 받고 체포됐습니다.


터키 야권이 그를 '포스트모던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일면 수긍이 가는 일이겠죠. 이같은 에르도안의 방식에 반발한 터키인들의 목소리는 이번 시위를 통해 폭발적으로 표출된 겁니다. 굳이 과거 한국의 사례에 빗대자면 광우병 우려가 있대서 우리가 싫다는 미국소를 왜 정부 멋대로 수입하려 드느냐며 광장으로 뛰쳐나왔던 2008년 상황과도 비슷하게 보이죠.


하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처럼, 에르도안도 대화할 뜻은 없어보입니다. “쇼핑몰 건설을 강행하겠다1일 밝혔네요. 이번 시위를 "비민주적"이고 "불법"이라고도 규정했습니다.  

의회 다수당이니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화와 소통이 실종될 경우 당장 집권정당의 몸은 편하겠지만’, 한 국가의 정치는 나중에 밀린 카드값같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겁니다

소통과 설득으로 해결할 도시 개발문제에 최루탄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제 때 해결했어야 할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만들지 않고 관리하지 않아서 빚어지는 문제 아니겠어요. 


이번 시위대 중 일부는 에르도안에 사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터키 공화국 정신의 토대를 놓은 아타튀르크의 초상화도 등장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네요. 

시위가 잦아든다고 하더라도 성공한 '이슬람 민주국가'로서 터키의 이미지가 상당히 구겨지는 것은 불가피해보이네요.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최민영


                                           (현재 여론조사 1위 정당인 민주당 당수 베르사니.              사진:AP)




 이탈리아 총선이 현지시간 24~25일 양일간 실시됩니다. 결과에 따라서 이탈리아의 향후 경제노선이 갈리기 때문에 시장에서 주목하고 있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3위 경제대국이자 국내총생산(GDP) 127%라는 엄청난 국가부채를 짊어진 이탈리아가 긴축노선을 유지할지, 아니면 반기를 들지 여부가 결정납니다. 유로존의 대마 이탈리아가 휘청일 경우에 유로존도 적잖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탈리아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낮아짐 → 이탈리아 국채이자, 구제금융 마지노선인 7% 상회 → 이자부담 못견딘 이탈리아 구제금융 신청 → 유로존 구제금융기구 자금 부족 → 유로화 가치에 악영향 → 다른 유로존 국가로 위기 전이 → 유로존 경제전망 암울 ... 이런 식으로 굴러가게 됩니다. 물론 총선 결과가 즉각 이런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아요.)


 유력한 시나리오는 ‘가던대로 고’입니다. 여론조사 전국 1위인 중도좌파 민주당이 선거법에 따라 전체 하원의석의 55%를 자동 확보하고, 중도연합과 연정을 꾸려 긴축재정을 유지하는 거죠. 2011년 말부터 이탈리아 총리를 맡아온 마리오 몬티가 새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아서 구조조정 및 개혁정책을 마무리짓게 됩니다. 


 

                                    (그 숱한 스캔들과 재판에도 살아남은 나의 눈을 바라봐...!            사진출처: 가디언)



 막판에 무섭게 떠오른 시나리오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재등장하는 겁니다. (이번에 정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분의 사진을 태워 물에 섞어 마시면 영생한다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그가 이끄는 우파 자유국민당은 재산세 환급과 탈세자 사면 같은 포퓰리즘공약을 내걸고 지난 8일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1위 민주당을 최고 2.5%포인트차로 바짝 추격중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1994년 이래 총리를 3번이나 지내면서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그는 2011년 재정위기 심화에 붕가붕가 파티, 미성년자 성매매 등의 추문으로 총리직에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했죠. 그런데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재벌인 그는 지난 두달간 줄기차게 방송에 출연하면서 정치부활을 꾀해온 겁니다. 



 이탈리아의 현재 정치경제적 문제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CNN기사 참조)


 1950~60년대 이탈리아는 일본과 한국에 맞먹는 경제성장을 구가했지만, 1960년대말부터 70년대 초에는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사태에 휘말립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에 노동자 복지를 확대하면서 사회적 안정을 꾀합니다. 조기퇴직자가 연금을 수령할 수 있었고, 의료복지도 대폭 늘어나지요. 이탈리아는 1975~95년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10%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누적됩니다. 현재 재정적자는 GDP대비 120%가 넘죠. 


 이런 게 바로 ‘퍼주기 복지’겠죠. 제대로 된 경제정책 없이 분배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경제체질을 약화시켜서 국민 모두에게 부담을 안기기 때문입니다. 1999년 유로화 가입 전에 이탈리아는 자국화폐 리라의 환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사실 이같은 방식은 이탈리아의 경직된 노동정책과 과도한 기업세와 각종 규제 등의 구조적 문제를 고치지 않은 것이라 ‘눈속임’에 불과했습니다. 이탈리아의 2001~10년 경제성장은 세계 180위로 에티오피아와 비슷합니다. 

 산업이 활력을 잃고 기존의 노조 중심의 노동정책으로 고용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3명 중 1명이 실업자이죠.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실업 청년들.                  사진: presstv.ir ) 



 이렇게 정치가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유능한 정당에게 국정운영의 권한을 맡기는 게 유권자들의 책임일 겁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 점에 있어서 좀 독특했습니다. 일 못하는 베를루스코니에게 '최장수 총리'의 영예를 안긴 거죠. 


 이탈리아에서 32년 거주한 작가 팀 파크스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탈리아의 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며 그가 이탈리아의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닐까, 지적합니다. “산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이다. 산이 움직인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언론을 장악한 언론재벌 베를루스코니는 그같은 환상을 주조하고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에, 정치적 무능과 추문에도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단 얘깁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정치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리 정밀하지 않습니다.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친척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뇌물을 받거나 공적자금을 사적인 용도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도 사퇴하거나, 사퇴할 생각도 하지 않고 도덕주의자들을 비난하며 직위를 유지한다.” (응? 이건 최근 한국에서도 종종 보는 얘기군요.)

 “남부로 갈수록 탈세가 만연해 나폴리에서는 치과의사가 경찰보다 더 낮은 수준의 소득을 신고한다.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꿔오거나 세율을 올려 메워야 한다.” “AC밀란의 구단주 베를루스코니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마리오 발로텔리를 영입했고, 그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또다른 변수는 풀뿌리 정당인 '오성운동'을 이끌고 있는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인 베페 그리요(사진)의 부상입니다.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그는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 실시와 긴축정책 중단, 의원급여 삭감 등을 내걸고 있습니다. 정책은 그리 참신하거나 현실성있진 않네요. 하지만 그는 기존 정치권에 크게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20%선의 지지율을 얻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죠. 그의 지지층의 심경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을 듯합니다. 

 "유럽연합도 싫다. 기성 정치권도 싫다. 도대체 당신네들이 만든 이 개똥같은 현실이 뭐란 말인가? 나는 차라리 정치신인에게 표를 주겠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지지율 3위 주자로 떠오른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도 볼 수 있겠죠. 그녀 역시 유럽연합에 반대하고 기존 정치권을 비판하면서 인기를 얻었으니까요.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최민영



 세계 무역질서를 바꿀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한다고 13일(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2년 안에 마무리짓겠다고 협상시한도 잡았습니다. 수십년간 말만 무성하던 두 경제거인의 무역담장 허물기가 이번에는 정말로 현실화될 모양입니다. 정말로, 세계 최대의 무역지대는 탄생하는 걸까요. 하지만 이 담장에는 여러 개의 ‘바윗돌’이 박혀있는지라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잘 해보자구!                     그래픽 출처: 뉴유럽)


 

  지금 이 시점에 미국과 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 얘기가 나온 것은 양쪽 모두가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재정적자와 경기침체로 허덕이는 두 거인들 사이에 놓인 무역장벽을 허물면 경제가 쌩쌩 돌아가면서 경기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거죠. 

 둘의 경제규모를 합치면 거의 전세계 경제의 절반정도, 교역량으로는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니까요. 미국의 교역규모는 3조2462달러(2010년) 유럽연합은 4조2947달러(2009년)에 달합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2일 국정연설에서 “대서양 양안의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은 보수가 좋은 일자리 수백만개를 미국에 가져다 줄 것”이라면서 운을 띄웠고, 유럽연합의 주제 마누엘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양측의 FTA를 통해 유럽연합 경제가 연간 0.5% 추가성장하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12일 국정연설에서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필요성을 언급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미국과 유럽의 FTA는 현재로서는 체결될 가능성이 더 높은 듯 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에이쁠 받을 거 아니면 수강 안할거야” 내지는 “결혼할 사람 아니면 연애 안할거야”의 태도로 유럽과의 FTA 가능성에 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번에는 정말 뭔 일이 나도 날 것이라는 거죠. 2015년을 목표치로 잡은 것 역시 유럽연합 현 집행부의 임기 내로 어떻게든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실제 양측의 자유무역협정은 어떤 효과로 이어질까요. 

 유럽집행위원회는 관세인하 효과는 낮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미 유럽과 미국간의 관세는 평균 4% 수준으로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관세 관련 내용을 다루게 된다면 관세 철폐 쪽으로 가게될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더 중요한 쪽은 양측의 상이한 규제 및 기술표준을 통일시키는 것이 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미국이랑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유럽 경제가 살아나요, 라고 말하는 주제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



 가장 큰 이슈는 역시 먹거리 문제가 될 듯 합니다. 

 식량을 연료개념으로 생각하는 미국은 호르몬을 주입해 키운 소도 먹고 유전자변형작물도 먹죠. 하지만 유럽은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식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우리 소비자들의 건강과 직결된 식품 안전 문제 만큼은 절대 양보 못하겠거든?”이라고 말합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유전자변형작물이 아직 한 톨도 싹틔우지못했던 유럽입니다. 쉽게 꺾을 수 있는 고집이 아니죠. 하지만 미국의 농업관련 기업들은 벌써부터 의회 측에 “유럽 좀 달래보세요. 아니, 우리가 만든 먹거리가 뭐 얼마나 몸에 해롭다고 그렇게 까탈스럽게 군대? 과학적으로도 해롭다고 입증이 안되잖아요”라며 슬슬 압박을 넣을 분위기죠. 


 화학물질에 대한 유럽연합의 깐깐한 기준도 협상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럽연합은 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의 생산기업이 유럽에 수출할 때에는 그 화학물질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증명하는 자체 실험 및 인증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죠. 유럽연합 시장을 지키려는 규제장벽으로 여겨지는데, 이걸 미국 측에서는 낮추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적재산권 관련 부분은 양쪽이 그나마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분야라지만, 제약 특허권을 둘러싸고는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네요. 정부조달 부문까지 각각 상대방에게 개방할지 여부도 협상변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두 거인이 손을 맞잡으면 얻을 수 있는 또다른 효과, 아니 사실 더 중요한 효과는 바로 정치적 위상의 재고입니다. 

 신흥경제국, 특히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되겠죠. 

 유럽연합은 경제위기 이후 특히나 중국에 대해서 그리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아웃소싱에서 가져간 중국에서 쏟아지는 저가의 상품이 유럽 시장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하는데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연합의 기업들을 중국이 ‘쇼핑’하듯 사들이는 데 대해서도 거부감이 있죠. 서방 중심의 패권을 중국이 위협하는 듯 하는 모습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패권으로 떠오르자 외교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하겠다면서 부랴부랴 오바마 정부 때부터 외교전략을 다시 짠 바 있죠. 

 사실 미국이나 유럽은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늙을 날만 남은” 듯한 후기자본주의인데다, 빚으로 쌓아올린 경제가 2007년 금융위기로 한계상황에 봉착한 것도 드러난 상황입니다. 

 하지만 둘이 손을 잡으면, 여전히 서방이 세계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되겠죠.

 그뿐만이 아니죠. 두 나라간의 FTA에 규정된 기술적, 법적 기준은 향후 세계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렇게 잃는 것보다 양쪽 다 얻는 게 많은 협상, 결렬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가 살아난다는데, 이 마법의 주문 앞에서 당해낼 자 누구일까 싶네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법. 

  앞으로 2년동안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겠죠. 


 

  그럼 미국과 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은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갖게 될까요. 


  긍정적 효과과 부정적 효과에 모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경향신문과 14일 인터뷰에서 “유럽연합은 27개국이 모인 곳이어서 상품과 서비스구성이 다양면서도 언어나 문화 등 비관세 장벽도 낮기 때문에 경제적 만족도로 따진다면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한국보다는 양자간 직접교역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더라도 준비는 해야 한다는 뜻이겠죠.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최민영



 장을 보러 간 스웨덴인 A씨는 지난달 냉동식품 코너에서 ‘쇠고기 100%’로 만든 라자냐(파스타의 일종)를 구입했습니다. 

 대형 식품회사 ‘핀두스’가 만든 제품이니까 믿고 샀죠. 

 갈은 고기에 토마토소스 등으로 양념한 라자냐는 맛도 그럴 듯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통해 자신이 먹은 라자냐의 정체를 드디어 알게 됩니다. 

 ‘말고기 100%’. 쇠고기는 단 한 점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판매된 상품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는데, 사건의 파장은 갈수록 번지는 양상입니다. 





                                                             (스웨덴 핀두스사의 라자냐 제품 사진)



 말고기를 좀처럼 먹지 않는 서구인들의 식탁에 누가 이 말고기를 올렸나, 지금 식품업계와 유럽 정부는 ‘진범찾기’ 소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계화 속에 식품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묻는 사건이지요.

 하청에 하청이 꼬리를 물고, 단가를 줄이기 위해 묘안을 쥐어짜내다보니 고의든 아니든 불량한 식재료로 소비자를 기만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말에는 식육동물에는 사용이 금지된 진통소염제 ‘페닐부타존’(일명 뷰트)이라는 약물이 사용됩니다. 이 약물은 심각할 경우 인체에서 혈액 교란이나 무형성 빈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동물 사료로나 쓸 싸구려 고기를 썼다’는 문제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추가: 영국 환경부는 14일 영국에서 도살된 뒤 프랑스로 수출된 말 가운데 3마리가 뷰트가 사용된 경우로, 식육 공급망에 유입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버거야 버거야, 너는 무엇으로 만든 거니? )



 말고기 파동은 지난 1월 중순 아일랜드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아일랜드 식품청이 자국과 영국에서 시중 판매 햄버거 제품 27종을 수거해 유전자(DNA) 조사를 한 결과 10개 제품에서 말의 유전자가 검출된 겁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테스코에서 판매하던 햄버거에서는 말고기가 29%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영국에서는 햄버거 체인점 버거킹의 패티 일부에서도 말고기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폐기처분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조사를 확대해보니, 햄버거 패티 뿐만 아니라 라자냐에도 말고기가 들어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알고보니, 유럽연합 내에서는 식재료 공급망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었던 겁니다. 



                                                           



 라자냐 원료가 되기까지, 문제의 말고기는 유럽 한 바퀴를 돌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문제제품을 판매한 스웨덴의 식품회사 ‘핀두스’는 문제의 라자냐 제품을 프랑스 업체 ‘코미겔’에서 납품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코미겔’은 룩셈부르크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프랑스 기업 ‘푸졸’에서 재료를 공급받았다고 하구요. 

 그런데 ‘푸졸’ 측은 “고기재료는 키프로스의 한 육류회사에서 사들인 것”이라고 하죠.

 이 육류회사는 “우리는 네덜란드 회사에서 샀다”고 하고, 

 이 네덜란드 회사는 “우리는 루마니아의 도살업체 두 군데서 공급받았다”고 말합니다. 

 (루트를 그리면 루마니아-네덜란드-키프로스-프랑스-스웨덴, 이렇게 됩니다. 빙글빙글…. )

 왜 말고기를 썼는지는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재정적 이유”, 그러니가 돈 때문에 썼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프랑스 푸줏간에서 판매하는 말고기. 별미로 인기. 사진출처: 영국 텔레그래프)




 스웨덴 ‘핀두스’사는 프랑스의 ‘코미겔’사 및 관련 하청업체들을 계약위반 및 횡령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10일 밝혔습니다. 

 핀두스사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미겔사는 악당”이라고까지 비난했네요. 

 코미겔사는 “우리도 속았다”면서 또다른 프랑스 기업 푸졸을 비난했습니다. 

 이거, 농식품산업 강국인 프랑스는 체면을 자칫 구기게 생겼군요. 부랴부랴 11일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가졌네요. 

 프랑스는 말고기를 ‘별식’으로 여겨서 푸줏간에서 팔기도 하지만, (영국은 말고기가 금기시되는 것과 상이하죠) 생산비용을 아끼려고 갈은 고기에 말고기를 섞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유럽의 개도국 루마니아는 만약 이번 말고기 파동의 ‘진앙지’로 드러날 경우 수년간 육류 수출 금지 등의 제재를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트라이안 바세스쿠 대통령이 피해 최소화를 위해 부심하고 있죠. 





 이번 사건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소당한 ‘코미겔’사로부터 육류를 공급받은 회사에는 액스푸트, ICA, Coop 등의 다른 스웨덴 업체들과 알디 등 영국업체들도 포함돼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슈퍼마켓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제품들의 진열을 중단했지만,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기는 쉽지 않겠네요. 

 이번 사건의 파동이 좀 잦아들 무렵이면 여러 건의 민·형사재판에다 제재조치들이 잇따를 듯 합니다. 영단어로 ‘blame game’이라는 단어가 딱 하고 떠오르죠. 



(추가: 파이낸셜타이스는 13일자에서 경기침체로 선진국의 말 도축량이 크게 늘면서 결국 유럽의 ‘쇠고기로 둔갑한 말고기’ 스캔들로까지 이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구제금융국 아일랜드에서 지난해 도축된 말 두수는 2008년 대비 10배 이상 늘어난 2만5000마리인데, 아일랜드에서는 자기 소유의 말이 일종의 ‘신분재’로 인기를 모았지만 경제타격으로 유지비를 감당못한 말 주인들이 말들을 포기했다고 하네요. 영국의 지난해 육류 공급 목적의 말 도축은 3년 전에 비해 두 배 늘어난 9000마리였고, 미국에서 매년 버려지는 말은 10만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 도축이 늘면서 가격이 낮은 말고기 공급이 증가했고, 유통 과정에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쇠고기로 둔갑해 유럽의 식탁에까지 올랐다는 거죠. )



(추가2: 2월 26일 현재 유럽의 말고기 파동은 쇠고기를 갈아 만든 재료가 들어간 냉동식품, 그러니가 네슬레의 파스타부터 이케아의 미트볼을 비롯하 피자, 고기파이, 케밥 등 거의 대부분의 음식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확대일로네요. 

 하지만 유럽의 쇠고기 가공식품에 대해 우리나라는 광우병 위험우려 때문에 수입을 제한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말고기 걱정은 안하셔도 될 듯 해요.)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최민영


 우리의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이 나란히 임금 인상 방안을 내놨습니다. 


 중국 정부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는 방안을 5일 승인했습니다. 

 2015년까지 도시노동자의 최저임금을 평균급여의 40%까지 인상하자는 겁니다. 또 독과점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국유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종전보다 5%포인트쯤 늘려 받아서 저소득층을 위한 연금, 의료보험, 주택같은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국무원은 밝혔습니다.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 AFP)



 이는 중국의 빈부격차가 사회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중국이 0.47을 넘어섰는데, 전문가들은 0,4만 넘어도 민란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죠. 중국은 연간 소득이 368달러에 못미치는 농촌 빈곤층이 1억2800만명에 달합니다. 게다가 유로존과 미국의 경기가 침체되면서 중국은 내수를 살려야 할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중산층이 늘어나고 소득재분배가 제대로 돼야 내수도 살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시행시기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2004년부터 수입분배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해왔지만 그동안 기득권측의 반발과 저항에 진통을 거듭해왔습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이례적으로 기업관계자들을 만나서 직원들 임금을 올려달라고 5일 요청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 경제부흥방안을 논의하는 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해서 “실적이 호전되고 있는 기업들은 종업원들 보수를 올려서 가계소득이 늘어나도록 협력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최근 일본 엔화가치가 많이 떨어지면서 실적이 좋아진 기업들에게 그 수익을 곳간에 쌓아두지 말고 직원들에게 나눠주라고 얘기한 겁니다. 아베노믹스에 따라 ‘무제한 양적완화’를 시행해서 덕본 기업들은 슬쩍 입 닦지 말라는 거죠. 


 총리가 이렇게 직접 나서서 당부까지 한 것은 민간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도 살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제한으로 금융을 완화하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투자하더라도 민간 소비가 자발적으로 늘어서 경제의 모세혈관에까지 돈이 구석구석 돌아야 경제가 사니까요. 일본은 기업은 부자인데 가계는 가난한 나라로도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장기불황 이후 정부가 공공지출을 크게 늘렸는데도 이 돈이 각 가계로까지 돌지 않으면서 빚어진 일이기도 하죠. 

 특히 아베노믹스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조금 뜨뜻하게 달궈서 물가상승률 2%까지는 괜찮다, 이렇게 목표를 잡고 있거든요. 그런데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안오른다면 실질가계소득은 줄어드는 셈이니 경제는 안살고 서민만 힘들어지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일이겠죠. 


 그런데 이처럼 자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서 내수를 살리려는 목소리들이 아시아권에서는 최근 적지 않습니다.



                                                      (태국 방콕 시장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 노동자들. AFP)


 지난해 12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나선 바 있죠.

 그는 전국 주지사·군수·경찰간부 및 지역 군사령관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저임금과 불공정 시대는 끝났다. 노동자 복지를 위해 싸우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며 노동복지에 관한 정부 입장은 노동자들의 요구와 일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집회와 파업의 원인이 기업에 있다면서 “기업들이 노동자 복지 개선에 힘쓴다면 이는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죠.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최저임금이 급등하면서 재계가 반발해 대량해고하고 노동계는 파업하는 갈등을 빚은 바 있습니다. 지역 단위로 최저임금을 정하는데 일부 지역은 70%까지 인상됐다고 하죠.

 

                                               (지난해 5월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최저임금제법 도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말레이시아는 지난 5월 민간부문에 대한 최저임금제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또 지난해 4월 주요 도시의 최저임금을 300바트(약 1만1100원)로 상향조정한 태국은 지난달부터 최저임금제를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임금이 오르면서 이 효과가 인접국으로 번지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내수시장이 커질 경우 수출 둔화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죠. 

 태국 정부는 지난해 4월 주요지역에서 최저임금을 40% 인상하는 조치를 단행했지만 지난해 2분기에 경제가 4.2% 성장하면서 ‘임금 올리면 경쟁력이 악화된다’는 재계의 주장을 통계로 반박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2013년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4860원입니다. 하루 8시간 일하면 약 3만8000원을 손에 쥡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한국의 임금수준은 경제규모에 대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지요. 2010년 OECD통계에 따르면 평균임금 대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상대수준은 0,33입니다. 평균임금이 100일때 최저임금을 받는 이는 33을 받는다는 거죠. 뉴질랜드는 51, 호주는 45, 캐나다는 39수준입니다. 

 기업들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기업이 죽는다고 말합니다. 자영업자들도 같은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수출로는 먹고 살 길이 갈수록 막연해지는 한국도 이제는 동남아국가들이나 일본처럼 ‘내수 진작만이 살 길’이 되어가는 상황입니다.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거죠. 

 이젠 최저임금을 온당한 수준으로 올려서 내수시장을 살릴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기업가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도 필요하겠습니다. 각종 ‘단가 후려치기’로 중소기업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현 대기업 중심의 시장구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기를 시작하는 13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미 연방의 최저임금을 현 약 7달러에서 9달러로 20%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수백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미국 경제도 살아날 것이라는 취지에서입니다. 이제는 선진국도 최저임금 올리기에 나선 거죠.)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최민영



흔히 ‘노르딕 모델’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은 “국가에 세금 많이 내고, 혜택도 많이 받는 나라”입니다. 사실 이는 1990년대 이전의 상황에 해당되지요.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인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이 네 나라들은 1990년대 이후에는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서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잡은 일타쌍피 일석이조의 개혁으로 2007년 재정위기 이후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이에 관해 ‘차기 수퍼모델’이라는 최신호 표지기사를 실었네요. 재작년 경향신문 특별기획 ‘복지국가를 말한다’ 팀장을 맡아서 노르딕 국가들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놓고 취재담당 유정인 기자와 고민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 기사가 왠지 친숙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유주의 성향이 좀 강해서 가려서 볼 필요는 있긴 하지만, 내용은 좋아요. 주요내용을 살펴볼게요.



                               (퀴즈: 국기를 보고 국가명을 맞춰보세요.   사진출처:더리얼싱가포르닷컴)



 작은 나라들의 정부개혁은 다른 나라들에게 아이디어를 주곤 합니다. 1980년대 대처리즘과 민영화를 추진한 영국이 그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은 종종 싱가포르의 사례를 언급하곤 하죠. 차기의 대세는 ‘노르딕 4개국’이 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네요. 남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2007년 경제위기 이후 성장둔화와 막대한 재정적자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이들 바이킹의 후손들은 국가경쟁력부터 복지와 국민행복도에 이르기까지 톱클래스 안에 들기 때문이죠. 노르딕국가들은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더 효율적이고 국민의 요구에 빠르게 답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거든요. 



 노르딕국가들은 1970년대~80년대에는 ‘고부담 고복지’의 사회주의체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땅이 척박한 탓에 살기가 어려워서 부조의 개념이 각 지역사회를 토대로 상당히 강했던 사회문화의 전통이 있었거든요.) 1993년 스웨덴의 공공부문 지출은 GDP의 67%에 달했다고 하네요.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심지어 소득의 100% 넘게 세금으로 냈을 정도라니, 통 크게 걷어 통 크게 썼던 정도가 짐작이 되지요. 


 하지만 이같은 경제모델은 1990년대에 위기를 맞습니다. (스웨덴의 경우 “80년대 사민당이 ‘제3의 길’을 표방하면서 금융부문을 개방했는데 이는 당시 초호황과 맞물려 부동산 거품을 일으켰다가 90년대 거품이 폭락하며 금융위기로 이어졌다”고 하지요.) 1970년대 세계 4위 부국이던 스웨덴은 1993년 14위로 추락합니다.

 이후 노르딕 국가들은 기수를 오른쪽으로 틉니다. 우파정당이 2006년, 2010년 잇따라 선거에서 승리한 이래 현재 스웨덴의 GDP대비 정부지출비율은 18%로 프랑스보다 낮고 곧 영국보다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세는 22%로 미국보다도 낮습니다. 연금개혁도 해서 미래세대가 현 세대를 부양하는 부담도 줄이고 장기적인 정부 재정건전성도 확보했죠. 스웨덴 정부가 매년 쓰는 가계부에서 적자율은 0.3%로 미국 7%보다도 훨씬 낮습니다. 








 공공서비스에 있어서 노르딕국가들은 ‘흑묘백묘’식입니다. 공공서비스가 제대로만 굴러간다면 제공자가 민간이건 공공이건 별로 개의치 않죠. 그래서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공공병원의 운영을 사기업에게 맡깁니다. “교육과 보육, 의료서비스도 무상에 가까운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는 가운데 약국과 병원 등 일부 기관의 민영화를 통해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하죠.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도 서로 경쟁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선택의 문제라고 하면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보다는 스톡홀름이 더 친숙할 것”이라고 한줄 요약을 했네요.



 사실 이같은 정책은 정부가 투명할 때에만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학교와 병원들의 실적과 성과는 평가되고, 정부는 극도의 투명성을 요구받습니다. 스웨덴에서 정치인들이 만약 서민들의 교통수단인 자전거 말고 검정색 리무진이라도 타고 다닌다 치면 권위적이고 부패한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크다죠.


 신자유주의의 또다른 이름인 대처리즘과 다른 점은 이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복지국가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큰 정부와 경쟁력있는 자본주의를 결합한 건데, OECD비율의 2배에 달하는 전체 노동자의 30%가 공무원인 식으로 국가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거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강해졌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한 사회안전망도 든든하게 지키고 있죠.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일자리도 알선해주고, 실업수당도 챙겨주니까요. ‘flexicurity’라는 단어로도 정의되죠. 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가리지 않습니다. 

(여담으로, 스웨덴에 취재갔던 유기자가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한 얘기를 했더니, 그곳 노동자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직업을 잃었다는 수치심 때문이냐”고 되물었다구요. 직업을 잃으면 밥줄이 끊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사회안전망은 단단했던 거에요.)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유무역의 원칙에는 꽤나 충실합니다. 스웨덴의 대표적 자동차회사인 사브는 파산했고, 볼보는 중국의 지리자동차에 매각됐죠. 자본주의 원칙은 지키되 그에 따른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쪽을 꾀하는 거죠. 


 물론 이 노르딕모델은 완전하진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코노미스트는 공공부문 지출이 이들 국가에서 여전히 높아서 지속가능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지 않냐고 지적하네요. 높은 세금을 피해서 세금이 낮은 나라로 이주하는 젊은이들은 여전하고 국가의 복지혜택에 의존하는 이민자들도 너무 많다구요. 


 하지만 노르딕 국가들에게 배울 가장 큰 교훈은 실용주의가 아닐까 싶어요. 현재 많은 국가들이 노르딕모델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폐기 일보직전의 모델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아나서야 하는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하죠. 깨끗한 정부를 운영하고, 국민의 믿음을 얻고, 그럼 납세저항도 줄어들고, 사회가 연대해서 함께 복지국가를 만들어서 불안한 개인들이 좀 더 안심하고 미래를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상 요즘 뜬다는 노르딕 모델을 정리해봤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최민영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2017년까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지난 23일 밝혔습니다. 

 물론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라는 단서가 달려있죠. 그 전에 유럽연합에 ‘양도’했던 사법 및 조세 ‘주권’을 되찾아오는 내용으로 회원국 지위 재협상도 할 계획인데요. 

 캐머런 총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내내 영국은 ‘감놔라 배놔라’ 훈수를 둬서 불같은 성격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에게 “닥쳐!”라는 얘기까지 들은 적이 있죠. 유럽연합이 토빈세를 신설해 유럽재정위기를 함께 극복해보자며 공생의 방안을 제안했을 때에 캐머런은 “절대 못한다”면서 버티기도 했구요. 

 유럽연합이라는 전체 드라마로 봤을 때 약간 ‘밉상 캐릭터’랄까요. 








 그런데 이 ‘밉상 캐릭터’가 역사가 깊습니다. 

 영국은 ‘유럽 회의론’의 심장부와도 같거든요. 

 (이하 영국 일간 가디언에 지난해 1월 26일 실린 기사 ‘Britain, proud home of Euro-scepticism’ 내용을 발췌, 재구성. 제가 공부하면서 정리해봐요...)




 영국은 유럽연합의 첫 탄생 때부터 회의적이었습니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았죠. 

 1957년 로마에서 유럽연합의 첫 발을 내딛는 협약 체결식 당시 영국은 장관급도 아니고 무역담당 국장급을 보냈거든요. 참여할 생각은 없으니 참관이나 하자는 거였죠.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유럽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전략적 실수를 깨달은 당시 총리 해럴드 맥밀란은 1961년 부랴부랴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프랑스의 샤를 드 골 대통령은 영국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를 즉각 수용하지 않았죠. ‘트로이의 목마’같은 존재로 봤다네요. (놀라운 혜안이다...)


 영국은 우여곡절 끝에 1973년에야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를 얻습니다. 

 영국 정계 내에서 유럽 회의론이 그나마 잦아든 것은 2차대전의 기억이 아스라히 사라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였습니다. 

 노동당은 ‘철의 여인’으로 불린 보수성향 마거릿 대처 총리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민주의 성격의 유럽연합을 포용하려고 했죠. 

 하지만 보수당은 여전히 유럽연합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채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대처 총리는 심지어 1986년 유럽의 ‘단일유럽화’ 방안의 연방주의에 “속았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보수성향이 강한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2010년 11월 25일자. "영국을 유럽에서 구하자")



 이같은 유럽 회의론은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유독 영국에서만 독특하다 싶을 정도로 강합니다.

 유럽 내에서도 영국은 유럽이지만 유럽이 아니다, “해협에 낀 안개, 고립된 대륙”이라는 얘기도 있죠.  

 가디언은 기사에서 그 네 가지 원인을 꼽습니다. 


 -고립의 역사 

 -지리적 위치 

 -사법체계와 지적 전통

 -종교


 영국은 8500년전 해수면 상승으로 북해 섬나라가 됐다가 다시 해협터널로 프랑스와 연결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고립의 역사를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어는 독일어도 라틴어도 아닌 독특한 언어로 발전했습니다. (어휘를 보면 독어도 라틴어도 프랑스어도 짬뽕으로 섞여있습니다.)

 실용적인 영미법은 로마법과 체계가 다릅니다. 

 헨리 8세가 만든 성공회는 카톨릭도 개신교도 아니죠. 


 전쟁에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가운데 피점령의 경험이 없는 나라는 영국과 스웨덴 2개국이 유일합니다. 

 경제, 학문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다소 뒤쳐졌다고 하더라도 영국에서 정치적 자유만큼은 번영했죠.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의 해양 탐사와 무자비한 해적들에서는 이 ‘특별한 섬’에 대한 감각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선사시대부터 해양무역을 해온 영국은 해군력과 산업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제국으로 떠오르죠.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였잖아요. 


 1945년 전후 경제력이 예전만 못하게 됐을 때에도 영국은 여전히 자신을 미국, 소련과 맞먹는 세계 3대 영향력 국가로 여깁니다.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가 있었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과거 영국 식민지인 ‘커먼웰스’가 있지 않겠습니까. 

 "유럽 따위가 뭐 필요하다고?" 이런 식이었죠. 같이 어울리기엔, 너무 잘났달까....





 

  그래서 전후 대륙 유럽이 카톨릭과 사회연대, 그리고 통제되고 보호되는 시장 등을 비롯한 사민주의로 기울 때 영국의 대처는 미국의 레이건과 함께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 그러니까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통한 번영을 꾀합니다. 

 물론 영국은 ‘제3의 길을 표방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집권기에 친유럽 노선으로 많이 달라집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회의론적인 노선을 아예 바꿀 수준은 못됐죠. 


 특히나 캐머런 총리가 속한 보수당에서 그같은 역사는 이어져옵니다. 

 대처가 1988년 물러났지만 보수당 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계속됐습니다. 

 그를 이어 총리가 된 보수당의 존 메이저는 유럽 단일통화 프로그램, 그러니까, 유로화를 도입하려는 방안을 추진하지만 중단되죠. 

   유로화는 어째저째 도입을 막았지만, 관료주의적인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가 점점 더 거만해진다고 영국인들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어찌 감히 대륙 유럽의 관료들이 영국 법과, 영국의 군사력, 영국의 수산업과 농업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나, 불만이 점점 쌓여갑니다. 


  그런데 유럽연합 회원국 지도부는 유럽연합을 경제공동체를 넘어서 정치통합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미국이나 중국과 대응할 수준으로 키워낼 계획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보수당 지도부는 ‘넓되 느슨한’, 그러니까 과거 소비에트연방 수준의 공동체를 생각했던 터라 "엉, 이건 좀 아니잖나" 계속 후회하게 됩니다. 대처의 “속았다!”의 메아리가 수십년 째 보수당 안을 메아리쳤던 거죠. 

 보수당은 독립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터라, 테크토크라트적이고도 엘리트적인 유럽연합 엘리트들과는 취향이 맞질 않았네요.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유럽의 두통거리가 돼온 유로존 재정위기는 영국의 보수당이 보기에는 유럽의 오만한 테크노크라트들의 실패인 겁니다. 유로존 위기의 타개를 위해 이런저런 규제를 요구받고 더 많이 공여하고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현 유럽연합 지도부, 그리고 관련 정책은 영국의 보수당이 보기에는 ‘떡잎부터 알아봤어야 했던’ 문제들인 거죠. 


 이상 영국이 유럽연합과 헤어지려는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맥락을 짚어봤습니다. ^^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