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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뽑기

기자칼럼 2014.08.08 21:00

최근 트위터에서 따끔하게 혼났다. “‘브라질리언 왁싱’이 유행한다는데 포르노 영향으로 사람들이 미쳤나보다”라고 트윗을 날린 게 화근이었다.

사용자들이 항의했다. 그것은 취향일 뿐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글을 지우고 사과했다. 취향을 비난하다니, 부끄러운 꼰대질이었다.

‘비키니’ 왁싱은 음부의 털을 왁스를 이용해 뽑는 미용시술이다. 1946년 처음 등장한 비키니 수영복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비키니 하의가 손바닥만 해질수록 뽑는 털의 면적은 반비례로 늘어났다. 털을 완전히 뽑아내는 ‘브라질리언’ 왁싱부터 일부를 남기는 ‘프렌치’ 왁싱, 조금 더 보수적인 ‘아메리칸’ 왁싱 등으로 세분화된다. 털을 남기는 모양(!)에 따라, 가게 따라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1회 시술에 가격은 10만원 안팎으로 적지 않다. 미국에서 대중화된 것은 2000년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를 통해서였다. 국내에선 최근 모 종편에 출연한 패널들이 왁싱을 언급해 사람들의 호기심이 부쩍 높아진 모양이다.

인간은 동물 중 거의 유일하게 털을 뽑고 자르고 관리한다. 자연을 통제하듯 신체를 통제하는 것이다. 미용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털과의 전쟁이다. 기원전 4000~3000년 고대 인도에서는 은밀한 부위의 털을 제거했다는 기록이 있고, 중동에서도 ‘위생상’의 이유로 비슷한 관습이 수백년 지속됐다. 서양에서는 복식 밖으로 털이 삐져나오는 것을 부적절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1999년 영화 <노팅 힐> 개봉 행사에서 환하게 웃으며 팔을 흔드는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겨드랑이에서 다듬지 않은 털이 발견됐을 때 언론이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여성의 털 관리는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압력에 기인한 것일까 (출처 : 경향DB)


하지만 털 관리는 참으로 성가시다. 남자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머리털을 깎고 매일 아침 턱수염을 깎는 사회적 ‘의식’을 거친다. 여성의 경우 관리 면적이 더 넓은 편이다. 풍성한 머리칼을 제외하고는 털 많은 신체는 성적 매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젊음’을 욕망하는 패션 산업이 사춘기 이전의 소녀 같은 신체를 탐닉하는 현상과 맞닿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2차 성징기 이후 자라난 털을 제거함으로써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미국 포르노 산업에서 브라질리언 왁싱이 유독 인기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여성들은 콧수염을 면도기로 깎고, 족집게로 눈썹 털을 정리하고, 제모제로 팔다리 털을 발라내고, 레이저 시술로 겨드랑이 털을 영구제모한다. 여기에다 ‘비키니 왁싱’이 더해졌다. 예뻐지려면 아픈 것쯤은 참아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신체에서 가장 예민한 부위의 털을 뽑아내는 게 건강상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의료계에서는 음모를 뽑거나 면도한 여성들에게서 모낭염이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 종기 등이 발생해 외과용 메스로 절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경고한다. 연약한 피부에 쿠션 역할을 하는 음모를 제거하면 작은 생채기와 감염에 더 취약해질 수도 있다.

이렇듯 여성이 신체를 통제하는 방법과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스스로 묻게 된다. 내가 제모를 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사회적 압력 때문일까.

미 애리조나주립대 여성학자 브리안 파스는 그래서 여학생들에게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고 10주간 견디기’를 수행한 뒤 소감을 적는 과제를 내줬다고 한다. 텀블러 블로그에서는 ‘털 많은 다리 클럽’의 여성 회원들이 털을 깎지 않은 자신의 다리 사진을 올린다. ‘매끈한 여성’이 되기보다는 ‘내 몸 안에서 편안한 사람’이 되길 택한 것이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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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