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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저씨’

기자칼럼 2014.09.19 20:30

‘개저씨’. 짐작대로 ‘개’와 ‘아저씨’를 섞은 말이다. 두어달 전쯤 이 신조어를 접했을 때는 혐오적 표현이고 못된 남자를 통칭하기에 과하다 싶었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성추행 사건의 용의자들을 일컫는 명칭으로 이만한 게 없지 싶다. 탄탄한 지위에 체면을 점잖게 뒤집어쓰고는 안달난 아랫도리를 간수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개가, 무엇을 잘못했더란 말이냐..."



대한민국의 법을 관리하던 고위공직자 출신으로 국회의장까지 지낸 70대 남성은 골프장에서 20대 초반 여성 캐디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등 성추행해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았다. 그는 “손녀 같고 딸 같아 귀여워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딸이 예쁘다고 젖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아버지가 정상인가. 그렇다면 엄연히 친족 간 성추행이다. 패륜에 무감한 이가 한 나라의 법무장관을 지냈다는 것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내면서 20대 청춘들에게 희망을 준 출판사의 한 남성 상무는 ‘청춘이니까 아파야지’로 오독한 듯하다. 기혼자인 그는 정직원 전환을 앞둔 20대 여직원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 성추행했다. 직원을 성적 대상화하는 임원이라니. 출판노동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서야 회사는 그를 사직처리했다.

이뿐인가. 어린 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쥔 성추행이 드러나 낙마한 전 청와대 대변인, 여제자를 성추행하고 군색한 변명 끝에 잘린 모 대학 성악과 교수, 연구생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을 일삼아 해임된 모 대학 교수, 길 위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여고생의 신고로 붙잡혀 낙마한 모 검찰지검장을 비롯해 근래 벌어진 사건들은 헤아리기가 무서울 정도다. 한국 사회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아저씨’들은 기회만 되면 훌러덩 체면을 벗고 짐승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수치심에 침묵할 테니 자기조절 따위는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남성들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편들고 나서니 의아스럽다. 출판사 성추행 사건에 대해 한 번역가는 트위터에서 “여직원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있지 않았냐”면서 임원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범죄를 완성한 것은 피해자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보이는 성추행은 사실 가해자의 엄밀한 득실계산 끝에 이뤄진다. 새내기 편집자가 좁은 출판계 바닥에서 나쁜 평판을 뒤집어쓰면 직장을 잃고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을 출판사 임원이 몰랐을 리가 없다. 손녀뻘의 캐디가 하늘 같은 고객님의 성추행에 항의했다간 일자리만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노인이 몰랐을 리 없다. 성에 관한 범죄는 대개의 경우 ‘성’은 가해자가 추구하는 부차적 이익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권력’의 쾌감이다. 피해자가 전전긍긍하며 반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상위 권력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차별’에 대한 몰인식이다. 인종, 민족, 종교는 물론이고 성에 대해서도, 상대방에 대한 감수성 훈련이 부족하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자들은 많이 배워도, 변변한 직업을 갖고 있어도 성적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일상에서 적잖게 겪는다고 호소한다.

지난 수십년간 여성들은 직장과 생활공간에서 이 같은 모욕감을 어금니 꽉 물고 수치심 속에 삼켰지만 이젠 달라졌다. 위의 사건들처럼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피해를 세상에 알릴 것이다. 유독 성추행 소식이 요즘따라 많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는 신호다. ‘개저씨’들, 조심해야 한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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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