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궁에서 15일 거행된 프랑스 대통령 취임식. 새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와 동행한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은 주간 파리마치 기자이자 그의 동거녀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였다. ‘대통령 부부’가 아닌 ‘동거 커플’이다. 

동거문화가 보편화된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내외가 법률혼 관계가 아닌 사상 초유의 상황은 낯설었던 게 분명하다. 이를 놓고 찬반 여론조사도 실시됐다니 말이다. 외교 공식석상에서 트리에르바일레를 어떻게 소개할지 난감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인 사생활에 관해서는 “침실 문턱은 넘지 않는다”는 개인주의 문화가 조사결과에도 반영된 듯 대다수 응답자들은 ‘문제될 것 없다’고 답했다.


독일 대통령도 ‘동거’ 중이다. 지난 3월 대통령으로 선출된 요하임 가우크는 지역언론 기자 다닐라 샤트와 결혼하지 않고 12년째 함께 살고 있다. 일각에선 “공무를 수행하려면 결혼하라”고 취임 전부터 그를 압박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 관계를 고집하고 있다. 언론매체들도 샤트를 ‘퍼스트레이디’로 부른다. 

‘동거’라고는 하지만 바람 불면 날아갈 가벼운 관계는 아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프랑스는 법률상 인정받는 동거인 팍스(PACS·시민연대협약) 제도를 두고 있다. 식만 올리지 않을 뿐 동거 이후 재산분배와 세금·교육·사회복지를 인정한다. 올랑드 커플도 이 팍스로 맺어져있다. 올랑드는 현재의 동반자를 만나기 전에는 세골렌 루아얄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와도 아이 넷을 낳으며 30년 가까이 결혼 아닌 동거상태로 지냈다. 결혼제도를 부르주아의 관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의 관점에서는 관계의 형식을 중요시하는 타 문화가 되레 낯설지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레비는 <아메리칸 버티고>에서 자신들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말다툼하는 미국인 연인을 우연히 마주친 뒤 “ ‘데이트’나 ‘관계’ 같은 너무나 미국적인 개념은 (프랑스어로) 번역 불가능하다”고 적었다. “연애 당사자들이 관계의 범주 안에 들 수 있는 모든 것을 언어화하고 평가하고 코드화하고 그리하여 결국 의식(儀式)화하는 그 광적인 태도” 때문에 “유럽에서의 연애나 감정적 관계가 간직하고 있는 그 돌발성의 향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 얘기가 대한민국 청와대를 배경으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관혼상제’와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유교문화 흔적이 강한 우리 토양에서 중년 넘은 미혼 남성은 대선 출마에 적절한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그의 동거녀가 취임식에 당당하게 동행하고, 트리에르바일레처럼 “청와대에서 출퇴근하면서 계속 내 일을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어려운 얘기다.

'기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거라는 리얼리티쇼  (0) 2013.06.18
개인주의가 감당해야 할 것들  (0) 2013.06.18
대통령의 동거녀  (0) 2013.06.18
마지노선  (0) 2013.06.18
러시아의 박정희  (0) 2013.06.18
인간의 오만함  (0) 2013.06.18

Posted by 최민영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