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45)는 배우 뺨치는 미남이다. 보도사진 속 빛나는 그를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은 순식간에 조연이 된다. ‘멕시코의 고소영’급 미녀 여배우인 부인 앙헬리카 리베라(41)와 함께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은 ‘젊은 정치인이 12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는 드라마’ 장면을 연상시켰다. 


‘텔레노벨라’(드라마)의 왕국 멕시코에서 선거전략으로 텔레비전의 강력한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페냐 니에토의 승리는 마치 “완벽하게 연출된 ‘대통령 만들기’ 리얼리티쇼”에 가까웠다고 전기작가 헤나로 비야밀은 지적한다. 대선운동 전부터 TV에 자주 출연했고, TV 스타와 재혼했고, TV 배우들과 정치행사에 동행하는 데 거금을 뿌렸다. 마약카르텔 연루 혐의와 경제파탄, 71년 장기집권으로 얼룩진 제도혁명당의 이미지는 대선후보로 나선 그가 가지런한 흰 치열을 드러내며 미소를 짓자 말끔하게 사라졌다. 유권자들은 리얼리티쇼에서 시청자 투표를 하듯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참여민주주의의 중요 원칙인 선거가 오락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멕시코 안에서 제기됐다. 


이 같은 현상은 미디어전문가 닐 포스트먼이 1985년 저서 <죽도록 즐기기>에서 일찌감치 예견한 바 있다.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도구에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선 어떤 사상이 내재돼 있다”고 가정하는 그는 12세기 안경의 발명이 신체적 노화의 부정, 현미경의 등장이 보이지 않는 심리 연구로 이어진 것처럼, 매체로서의 텔레비전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꿨다고 지적한다. 역사성이 지워진 정보의 현재성과 강력한 오락성이 그것이다. 텔레비전의 강력한 자기장 안에서 정치는 오락화된다. 

정당 대신 정치인이 부각되고, 이미지 정치에서 사람들은 구체적 이익이 아니라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한다. 과거에 정당이나 정치인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TV 속에서 중요성을 잃어버린다. 대신 ‘만들어진 이미지’가 선거 판세를 좌우한다. 

그래서인지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좋은 정치인이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각광받는 경향이 강하다. 페냐 니에토처럼 수려한 외모를 갖췄거나,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욕망하는 물질적 성공을 움켜쥔 재력가이거나, 비극을 딛고 일어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소공녀’가 그렇다. 정치인이 정책개발을 비롯한 본업과는 무관한 ‘귀여운 율동’이나 각종 행사 방문으로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것도 경쟁자보다 더 강한 잔영을 유권자의 눈에 새기기 위한 일종의 TV 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본질을 읽어내는 수고 없이는 참여민주주의가 리얼리티쇼로 전락할 위험을 떨치기 어려워진다. 유권자의 표 한 장 무게가 리얼리티쇼의 참여전화 한 통 무게와 같을 수는 없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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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