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시내 중심가 카페의 통유리창 밖으로 행인들을 관찰하던 지인이 “옷차림이나 생김새를 보면 사람들 교육이나 소득수준을 대략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외모지향적인 한국에서 외모는 곧 사회계급”이라는 것이다. 물질주의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외모가 남보다 뒤처지는 것은 곧 외모에 그만한 돈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증거처럼 여겨진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한국 남자들도 이 같은 외모지상주의에서 예외가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세계 남성화장품 시장의 21%를 한국이 차지했다는 조사결과를 최근 내놨다. 1900만명의 한반도 남쪽 남자들이 4억9550만달러(약 5540억원), 그러니까 연간 1인당 29만원어치 화장품을 구입한 것이다. 비누로 세수하고 ‘생얼’로 다니는 것은 옛날 얘기가 됐다. 남자들도 세안전용비누에 토너, 로션과 자외선차단제를 바른다. 10만원대의 남성전용 에센스를 내놔도 한 달분 물량이 나흘 만에 품절될 정도로 손 큰 한국시장은 업체들에는 귀한 손님들이다. 모 브랜드에서는 군복무 중인 민감한 피부의 남성들을 위해 피부트러블이 적게 나는 위장크림과 클렌징 세트를 출시해 쏠쏠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외모에 더 민감한 이들은 BB크림을 덧발라 안색을 화사하게 가꾸고 눈썹도 가지런히 정리한다. 한 20대 남성은 “젊을 때 관리 안 해서 피부가 뒤집히면 어떡하냐. 직장 면접보기도 민망하고 피부 나쁜 남자는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처럼 남성중심적이고 ‘마초’ 많은 사회에서 남자들이 피부화장을 하다니 모순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외모가 불가피하게 변수로 떠오르는 상황을 반영한다.

노동자 4명 중 1명꼴로 직장을 잃었던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기점으로 미국 사회에 성형수술이 대중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성형수술의 역사를 다룬 <비너스의 유혹>에서 당시 디트로이트의 한 외과의사의 말을 전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새로운 정점에 올랐다. 경쟁은 한도 없다. 이 적자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멋진 외모를 포함하여 모든 사용 가능한 무기들을 획득하는 데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첫인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우화가 각종 상업광고를 통해 개인들의 심리에 파고든 상황에서, 외모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할까봐 열등감과 불안에 빠진 미국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형수술에 도전했다.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 한국의 남성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도 그와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남성화장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 1997년 경제위기 이후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경쟁이 격화된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처럼 얼굴을 꾸미지만, 매끈한 피부 아래 우리는 애써 불안감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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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