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이라도, 싸게! 


 인터넷 쇼핑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싼 가격을 찾아 국내 사이트를 뒤지다가 내친 김에 배송료 환율까지 계산해가면서 글로벌 사이트를 순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라고 있는 문명의 이기, 인터넷이 아닌가 생각하죠. 


"부자되세요"가 비공식 국민헌장의 첫머리인 시대, 공기업도 기업이니 이윤을 남겨야 하는 시대 아니던가요. 


그렇게 살지 아닐지,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 살지 여부는 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를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5일자에 소개했습니다. 


이윤보다는 연대를 지향하는 프랑스의 온라인 중고장터 ‘르봉쿠앵’(Leboncoin.fr) 이야기  입니다. 





르봉쿠엥은 우리말로 '좋은 코너'라는 뜻입니다. 월 사용자 이용시간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2위(2시간 15분)라고 하네요. 1위인 페이스북(5시간26분)의 경우 10대들이 엄.청.나.게.오.래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 세대에 걸친 사용시간은 최고가 아닐까 생각되죠. 일일 방문자는 360만명에 달합니다. 


2006년 문을 연 사이트인데 상당히 성공적이죠. 


그런데 첫 화면이 참 단순합니다. 판매되는 물품 중에 '핫한 아이템' '싸게 나온 아이템'들이 휙휙 번쩍번쩍 깜빡깜빡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색으로 연결된 프랑스 지도를 보여줍니다. 

물건이 아니라 일단 '지역'이 중심인 회사의 운영철학을 보여주지요. 

바로 "집 근처에서 사고 파세요" (Vendez, achetez, près de chez vous) 입니다. 


이베이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드리겠다"며 전세계의 판매자와 전세계의 구매자를 연결시키지만 르봉쿠앵은 프랑스 내에서 '자기 집 근처'에서 거래가 이뤄집니다. 

물건이 오고갈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을, 우리 지역의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겁니다. 



 




각 지역을 나눈 다음에야 물건이 언급됩니다. 

가짓수는 정말 많습니다. 

부동산도 거래하네요. 문을 연 이후 100만건이 거래등록됐다고 합니다. 

중고차는 90만대, 중고 신발 거래는 2011년 코너가 생긴 이후 70만켤레. 

그리고 의류와 장난감 등 중고품 수백만 건이 거래를 위해 등록됐습니다. 개인의 광고 등록비용은 무료입니다. 


지역 게시판 역할도 도맡았습니다. 카페에서 이뤄지는 문학강연이나 핸드볼 경기 참가 안내도 이 사이트를 통해 이뤄집니다. 이용자 수요에 따라서 메뉴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데, 조만간 ‘카풀’이나 ‘보모’ 관련 광고도 등장할 것이라고 회사 측은 밝히고 있네요. 


그런데 이 '매우 프랑스적인' 르봉쿠엥 현상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고 르몽드는 소개합니다. 

이익 추구에 이용자들이 관심이 별로 없다는 거죠. 

신문이 인용한 시장조사기업 소르젬의 분석에 따르면 르봉쿠엥 사용자들은 "상품이 아니라 물품을 거래한다"고 생각하고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것을 나눔으로서 약간의 금전만 얻으려 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하네요. 


르봉쿠엥 현상을 분석한 사회학자 알랭 카이에는 르몽드 기고문에서 이렇게 분석합니다. 


"계산으로 가득찬 시대에 르봉쿠앵의 이용자들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 같다. 이 사이트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일상의 영역에서 살아있는 세상을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열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르봉쿠엥이 프랑스라는 공동체를 상징하는 온라인 상의 공간이라고 해석하죠. 

이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연대(Solidarité)라는 가치를 갖고 기꺼이 참여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곳의 상거래에 참여하면서 

누군가 필요로 할 물건, 내게 큰 필요가 없는 물건을

그 물건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적정한 가격으로 내어주는 행위를 통해 연대하는 거죠. 






미국적 가치를 반영한 온라인 상거래 기업 이베이가 경매시스템을 통해 '최고가'를 부르는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것과는 많이 다르죠. 


신뢰에 바탕한 성숙한 온라인 문화도 특징적입니다. 


판매자는 별다른 신원 등록 없이 사이트에 물건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예로 위의 사진처럼 아기 신발을 15유로에 내놓은 판매자는 연락이 가능한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남깁니다. 그럼 물건을 보고 필요한 사람이 직접 연락을 취합니다. 

이렇게 매일 오가는 연락이 하루 100만건이 넘는다고 하네요. 

누군가 신원도 보증하지 않는 판매자 물건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걸까요. 

네, 그렇다고 합니다. 

서로 믿는 사회이기 때문이죠. 

구매자는 부정한 상거래 위험 가능성도 기꺼이 감내합니다. 

물론 말썽이 없는 건 아니어서 하루 수십건의 분쟁이 발생하지만 수백만건이나 되는 광고량에 비춰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죠. 


이렇게 물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합의된 최적의 가격으로 동네 근처에서 오고 갑니다. 


이 서비스는 원래 노르웨이 기업 십스테드가 전세계 31개국에 제공하고 있는데 프랑스만큼 성공적인 사례가 없다고 하니, 분명 프랑스적인 현상인 건 분명하죠. 






조금 더 큰 틀에서, 경제현상으로도 르봉쿠앵을 볼 수도 있네요. 

경제학자 미셸 드보뇌이는 '새로운 경제의 등장'이라고 르몽드 기고문에서 분석합니다. (거칠게 쓱쓱 옮겨보면요...)


"르봉쿠앵 사용자들은 그들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을 스스로 책정함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소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무슨 얘길까요. 드보뇌이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생산의 자동화에 따라 상품의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에 따라 대형 유통업자들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중간단계로 등장했죠. 그런데 점점 고압적이 된 이들은 아웃소싱해서 싸게 생산한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마진을 많이 남기면서요. 하지만 아웃소싱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이같은 상품에 대한 구매력이 갈수록 떨어져갑니다. 


그래서 거대금융에 대한 반발로 지역화폐가 등장한 것처럼, 거대유통업체에 대한 반발의 맥락에서 지역물물교환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그는 파악합니다. 왜 유통업체만 배불리는, 마진이 거품같이 낀 상품을 소비자들이 사야하는 걸까요. 물건의 진짜 가격은 얼마일까요. 얼마에 거래해야 그 물건의 진짜 가치일까요. 그렇게 소비자들이 묻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는 "거품 낀 가격, 지속불가능한 경제모델을 바로잡으려는 소비자들의 직관적인 노력”이 바로 르봉쿠앵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다만 모든 시민들이 '판매자'이자 '생산자'가 됨으로써 다시 시장의 관계에 빠져들 가능성은 염려해야 한다고 덧붙이죠. 

현재의 부조리한 경제 시스템을 바꾸려면 새로운 마인드가 필요한 거니까요. 





마침 일본의 사상가 가리타니 고진은  경향신문 신년 인터뷰(2012. 1. 8)에서 이렇게 말했네요.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은 불가능한 시기가 됐다...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가'라는 생각,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사고가 오히려 필요한 시기이다."




이상, 새로운 경제모델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르봉코앵 이야기였습니다. ^^




(p.s 제 프랑스어 실력이 완벽하지 않아 약간 매끄럽지 못하거나 살짝 의역이 있을 수도 있어요...헤헤헤...)

Posted by 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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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dtear 2013.01.11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 장터들도 과거에는 그랬었죠.

    자기 물건을 기꺼이 저렴한 가격에 커뮤니티 회원들과 나누고,

    그걸 구입한 사람도 자기 물건을 다시 저렴하게 내놓는 선순환구조.


    외부에서는 소위 '쿨매물'이 많이 나오는 장터라고 불렸구요.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달라졌습니다.

    저렴하게 구입해서는 비싸게 되파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그런 장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거든요.


    씁쓸하네요.

  2. 최민영 2013.01.12 1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일이든 좋은 의도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그 좋은 의도로 일이 유지되도록 하는 게 더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씁쓸하네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